이번 지방선거 기간 중 다소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투표했다는 ‘인증샷’을 올려주면 1,000명을 추첨해서 자신이 만든 판화를 선물로 주겠다는 일종의 투표 참여 이벤트. 판화가 임옥상 화백이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트위터’에 올린 이 공지는 즉각 퍼져나가 무려 7,000여명이 응모하는 등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또한 문화평론가 탁현민씨는 20대 투표율이 10% 이상 상승하면 무료 콘서트를 개최하겠다는 ‘공약’을 하는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투표 독려 이벤트 가 펼쳐졌다.

   
   
 

그 외에 방송인 김제동을 비롯한 연예인들의 ‘투표 인증샷’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간 일반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 커밍아웃’ 등 기존 선거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꼭 위에서 언급한 이유 뿐만은 아니겠지만 54.5%라는 지방선거 역대 최고 투표율을 달성했으며 그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는 바와 같다.

   
   
 

단지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는 이후에 일어난 단체장 당선자 현황과 지방의회 의석 변화에만 있지 않다. 54.5%라는 투표율이 가져다준 변화. 그것은 상당히 크다. 작게는 4대강과 대북기조 등 막가파식 정책에 대한 제동이고 한나라당 패배라는 결과론적 현상이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기존의 정치 프레임과는 또 다른, 새로운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젊은 층의 적극적인 투표참여가 높은 투표율에 기여했으며 그를 통한 높은 투표율이 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 힘을 실어주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젊은 층이 어떻게 투표를 바라보고 참여했으며 그것을 통해 어떻게 소통했느냐에 있다.

그것은 바로 선거라는 정치적인 사뭇 진지한 행위, 즉 보수언론과 기성 정치권의 프레임에 갇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혹은 없게 느껴지게 만든) 정치행위 소프트웨어를 다양하고 새로운 하드웨어를 통해 유희적이고 일상적 행위로 바꿔냈다는 점이다. 다소 변혁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젊은 층의 적극적 투표참여에는 놀이와 문화, 정치적 행위의 경계선을 무너지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

마치 ‘셀카’처럼 투표소 앞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미니홈피에 올린다던가, 그를 통해 이벤트를 자생적으로 조직해내고 타인들과 소통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북풍과 심판, 견제 등의 ‘정치 언어’가 난무했던 ‘부여된 현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우린 이미 이런 패턴의 행동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구호가 난무하고 깃발이 나부꼈던, 집회라는 무겁고 진지한 행동이 얼마나 즐거운 유희 문화가 될 수 있는지 2008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몸소 보여준 적이 있지 않은가.

미란다원칙조차 고지하지 않은 마구잡이식 연행을 ‘닭장차 투어’라 부르며 즐기는가 하면, 광화문 광장을 가로막았던 컨테이너 박스를 ‘명박산성’이라 부르며 패러디하고, 시청에서 ‘1박2일’ MT를 열며 지금은 그냥 ‘잔디밭’이 되어 있는 시청 앞 광장을 토론과 유희의 공간으로 만들었던 기억.

   
   
 

또한 이런 관심과 참여의 기저에는 현 정권에서 보여준 행동들이 결코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현 정권 스스로의 모습이 있다. 김제동을 비롯한 방송 진행자들의 교체 혹은 프로그램 불방, <지붕뚫고 하이킥>이나 <무한도전>, <개그콘서트>에 대한 정부여당의 간섭과 대응, 그리고 MBC 파업까지, 전혀 정치와 관계없다고 생각되었던 (혹은 생각되게 만들었던) 문화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심각하게 침해되고 피해받는 것.

표현의 자유처럼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방송 프로그램 등 일상적인 영역에까지 자유를 훼손당했던 그간의 사건들은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일반 시민들, 그리고 젊은이들을 각성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억압의 기제를 권리 행사라는 유희로 변화 발전시킨 자연스런 집단 지성이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결과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흥미롭다. 사실 어느 순간엔가 정치는 쿨하지 못한 것, 술자리에서의 정치 얘기는 분위기를 깨는 주제 등으로 폄하되었었다.

극심한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켜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은 권력을 잡고 있는 기득권이 구사하는 고도의 책략이다. ‘환멸’을 ‘풍자’로, ‘심판’을 ‘놀이’로, 투표를 문화적으로 유희하는 대중들의 정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이 과정을 잘 살펴보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보였던 많은 문화적 현상들은 이후 어떻게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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