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입니다. 작은 에프 2요.'

야구기자들의 암호다. 6은 유격수 3은 1루수를 지칭하는 숫자다. 6-3은 유격수가 잡아 1루에 송구해 아웃카운트를 잡았다는 의미, 즉 유격수 땅볼을 말한다. 작은 에프 2(f2)는 포수 파울플라이 아웃을 뜻한다.

3시간이 넘는 승부가 한 장의 기록지에 고스란히 담긴다. 경기 도중 기자들의 손이 쉴 틈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 기록지 때문이다. 여기까지 일은 기록원과 다를 게 없다. 기록지에 담을 수 없는 것들까지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 그게 야구기자들이다. 경기 내용을 전하고 분석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업무다. 하지만 프로야구 전 경기가 생중계되고 실시간으로 인터넷에서 경기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요즘 경기상보의 비중은 많이 떨어졌다.

맨투맨으로 취재원을 상대하며 그들의 속내를 끄집어내고,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슬럼프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게 나의 중요한 업무다. 스토브리그에는 '2009 한국시리즈 MVP' 나지완이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것도 박스기사가 된다. 시즌은 6개월에 불과하지만 야구 기사는 1년 내내 쏟아내야 한다.

사건기자로 폭풍같은 1년을 보내고 체육부 발령을 받은 것은 2007년 12월. 인형 대신 공을 차고 던지며 자랐던 나에게 체육부라는 출입처는 황금밀밭과도 같았다. 그러나 KIA 타이거즈는 쉽지 않은 출입처였다. '프로'무대는 막무가내로 뻗치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역적이지만 중앙적이기도 한 프로구단의 특성도 지역지 기자인 나에게 고민을 안겨주었다.

   
  ▲ KIA타이거즈 최희섭(왼쪽), 안치홍(오른쪽) 선수와 함께 한 김여울 광주일보 체육부 기자.  
 
2008년 일본 미야자키로의 첫 전지훈련취재부터 만만치 않았다. 낭만적이고 여유로울 것 같았던 전지훈련은 말 그대로 '훈련'뿐이었다. '오전 7시 기상, 오후 6시 마감, 야간훈련 동행'의 스케줄은 미야자키에 머문 1주일 동안 계속됐다. 서먹서먹한 데다 피말리는 경쟁으로 선수들의 신경이 곤두서있어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첫 전지훈련은 '충격'의 현장이기도 했다. 2008년 KIA의 스프링 캠프때 단연 화제가 됐던 인물은 투수 호세 리마였다. 화려한 성적과 상상을 초월하는 쇼맨십으로 2008년 겨울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리마가 첫 실전 피칭을 했다. 그 넓은 경기장에 미트에 공 들어가는 소리만 울릴 만큼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던 순간이었다. 당연히 리마 실전 피칭이 톱기사가 됐다. 특종을 한 것 같은 심정으로 쓴 기사였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그런 기사가 나온 지도 모르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온라인 무대가 활성화된 전문지와 달리 지역지들의 경우 아직 오프라인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려있다. 또 KIA가 전국적인 관심 대상인 것에 반해 광주일보 대부분의 독자는 광주·전남지역에 한정돼있다.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을 살핀 초보 야구기자의 충격은 꽤 컸다.

고심 끝에 방치해두었던 개인 블로그 재단장에 들어갔다. 지역지 기자의 최대 장점인 '접근성'을 살려 지면에 싣기엔 부족하지만 야구팬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그라운드 뒷얘기에서부터 지면에 다 담지 못한 것들을 토닥토닥 적어내기 시작했다. 일간지 기자로서의 딱딱한 틀을 벗어난 글쓰기도 시도하면서 조금씩 독자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렇게 광주일보 그리고 김여울이라는 이름이 더 많은 분들에게 친숙해졌다.

좌충우돌 보냈던 2년. 4강에도 들지 못한 팀 출입기자라고 편집국에 있는 듯 없는 듯 살던 나는 12년 만의 우승 현장에 선 우승팀 출입기자로 신분(?)이 급상승했다. 회사 주최의 무등기대회와 KIA의 1박2일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쉬지 않고 야구를 보기도 했다. 근엄하게 체통을 지키던 '선수님'들 거리낌없이 몸 개그를 선보이고, 수줍음을 잃은 선수들 아무렇지 않게 유니폼을 벗어 던지기도 한다.

요즘 난 세 번째 전지훈련 취재 일정을 짜고 있다. 2010년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쓰여질지 마음은 벌써 그라운드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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