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입이 가볍다. 남의 나라에 가서 그 나라 대통령 당선자의 대(對) 국민약속을 '선거용'이라며 무시하고, 불필요한 자극적 발언으로 남북한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무책임하게 주식·펀드 투자를 권유한다. 대통령의 가벼운 입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의 전 재산 헌납 약속을 왜 여태껏 이행하지 않을까? 그 궁금증이 다소 풀렸다. 미국을 방문 중이던 대통령이 지난 16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그 답을 유추할 만한 발언을 했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
대통령의 이 말은 미국이 자동차 산업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하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대통령은 “FTA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문제는 미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자기네들이 철저히 검토할 것"이라며 "선거 때 한 발언을 근거로 계속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남의 나라 대통령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치부하는 것은 얼마나 큰 결례인가.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재협상에 대비한 고민을 너무 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하게 된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수 있다. '747공약(경제 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처럼 무리한 선거용 공약이라든가, 한반도 대운하 건설처럼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공약 같은 게 대표적인 경우다. 대통령의 통치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외부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산 헌납은 대통령의 인격을 가늠할 수 있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다. 나라 경제와 서민들의 삶이 갈수록 궁핍해지는 지금이 재산 헌납을 하기엔 가장 적기가 아닐까?

속단하기엔 이르지만, 대통령의 재산 헌납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양재동 건물에 세든 노래방 주인을 상대로 건물명도 소송을 제기했다지 않은가. 대통령은 소장에서 “세입자 이모씨가 윤락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어겼다”며 “위반할 경우 건물에서 퇴거하겠다고 한 만큼 건물을 비워줘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소송까지 걸어가며 그토록 애착을 보이는 재산을 과연 선뜻 내줄까? 자신이 만든 부동산 임대회사에 아들과 딸, 운전기사까지 위장 취업시켜 탈세를 하면서까지 모은 재산을 과연 내놓을까?
대통령은 또 이날 간담회에서 "북한 문제의 경우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통일하는 게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말했다. 당장 북한은 개성관광 중단,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남측 관계자 축출, 경의선 화물열차 운행 중단 등 강경한 조치로 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책임한 말이 남북관계를 다시 냉전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도 위태롭다. 남북경협시민연대에 따르면 개성공단이 완전 폐쇄될 경우 직접적인 경제 손실이 3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과연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실용이고, 경제 살리기인가?
대통령은 또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말을 남발하고 있다. 주식 및 펀드 투자와 관련된 대통령의 최근 어록을 정리해보자.

   
  ▲ 박상주 논설위원.  
"지금은 주식을 팔 때가 아니라 살 때다.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 내에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24일 로스앤젤레스 동포 간담회)
"분명한 것은 지금은 주식을 살 때다."(10월30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오찬)
"나는 직접투자가 불가능하지만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9월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불과 두 달여 동안 세 차례나 주식과 펀드 투자를 권하는 무책임한 발언을 잇달아 쏟아낸 것이다. 대통령의 말을 믿고 펀드에 투자했다가 쪽박을 찬 국민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대통령의 말은 세상을 출렁이게 한다. 한마디 한마디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가벼운 입을 경계하는 성경 말씀을 묵상한다.

"속이 깊은 사람은 알고도 모르는 체하지만, 미련한 자는 어리석은 소리를 떠들어댄다."(잠언 12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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