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국산 식용쌀을 수입한데 대해 농민단체들이 대규모 항의집회를 준비하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장 이수금)은 지난 달 31일 전농 제주도연맹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외국산 식용쌀을 수입한 것은 지난 94년 UR체결 당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처사”라며 “모든 조직 역량을 총동원해 식용쌀 수입 저지운동을 강력히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농은 이에 따라 이달 1일부터 열흘간 연맹 소속 군대표자 1백여명이 참여해 전국 40여개 시군을 순회하는 ‘통합의보, 쌀자급을 위한 도보행진’을 실시하기로 했다. 전농은 또 도보행진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만여명의 농민들이 참여하는 ‘통합의보, 쌀자급을 위한 96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전농의 각 도연맹 소속 농민 1천여명은 지난 달 20일 전남 여천항을 시작으로 부산항, 인천항, 군산항 등 전국의 주요 항구에서 중국산 수입 식용쌀의 하역작업이 이뤄지는 데 반대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처럼 농민단체들의 반발이 확대되는 데는 이번 정부의 중국산 식용쌀 수입 방침이 지난 94년 말 UR협상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수입쌀은 전량 가공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 밝힌 정부당국의 ‘식용쌀 수입 불가’ 방침과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UR협상 당시 “정권을 걸고서라도 쌀수입만은 않겠다”던 김영삼대통령이 강대국의 압력에 밀려 쌀시장을 개방하게 되자 국민의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바로 ‘식용쌀 수입 불가’ 방침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장 개방 시한인 2004년까지의 ‘의무 수입량’인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떡쌀이나 쌀과자 등의 원료인 가공용 쌀만을 들여오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정부가 인도산 가공용 쌀 5만1천톤을 수입한 것도 그같은 맥락에서였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 6월 “쌀 자급기반 확충과 쌀산업 경쟁력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며 ‘쌀 산업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던 정부가 “쌀 수급의 불균형에 따른 식량 부족사태가 우려된다”며 올해 최소시장접근 물량 6만4천톤을 중국산 식용쌀로 수입하기로 방침을 바꾸자 이같은 정부의 쌀 정책에 대해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

또한 정부가 중국산 식용쌀 수입 방침을 밀어붙인 것은 이후 최소시장접근(MMA) 물량 이외의 외국산 식용쌀의 본격적인 수입 방침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게 농민단체들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달 중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보유한 쌀 재고량이 계속 줄고 있어 식량 부족 사태가 우려된다”며 “식용쌀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논의가 정부안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말해 외국산 식용쌀의 추가 수입 방침이 조만간 가시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또한 지난 8월28일 미국의 무역대표부가 우리 정부의 중국산 식용쌀 수입에 대해 “한국정부가 식용쌀을 수입할 경우 미국쌀을 수입하겠다고 약속했었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농민단체들은 이를 두고 “UR협상 당시 식용쌀 수입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이면 합의가 실제했던 것 아니냐”며 강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외국산 식용쌀 수입을 본격화할 경우, 전체 농산물 재배농가의 80%가 쌀 생산 농가이고 전체 농가소득의 40%가 쌀생산 소득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농민경제가 엄청난 시련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게 농민단체들의 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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