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위원회가 ‘국제중 설립 동의안’ 심의를 보류키로 결정한 뒤 “교육위원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던 공정택 교육감은 반나절도 안 돼 처음 계획대로 ‘내년 3월 개교’를 추진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공교롭게도 보류결정이 내려진 날 밤부터 해괴한 풍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국제중 신설로 새로이 형성될 사교육시장에 한껏 기대가 부풀었던 일부 학원관계자들이 공 교육감에게 ‘선거지원금 폭로’ 등 강한 압박을 가하며 입장번복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느닷없이 “3월 개교” 방침이 발표된 것이다.

국제중 유보에서 강행, 말바꾸기

이 풍문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공 교육감이 갑자기 말을 바꾼 것을 학원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교육감선거를 도운 학원계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해야 할 공 교육감으로선 국제중 설립을 유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 내용이다. 더욱이 학원관계자들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빌려 썼다는 이유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공 교육감에게 선거자금 내역 추가공개 압박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라는 것이다.
풍문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서울지역 공교육의 최고 집행권자인 교육감의 석연찮은 입장번복을 놓고 ‘학원 압력설’이 나도는 것 자체가 교육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고치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바로잡지 말라’는 옛말도 있듯이, 공 교육감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사교육이 공교육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상투를 흔드는 꼴’이 벌어져선 안 된다.

여기서 불쾌한 상상 하나. 우리가 교육감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이 사실은 학원 쪽이 고용한 ‘○○학원 ○○지점장’이었다면? 또 “사교육비 확 줄이겠습니다”라는 선거공약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통째로 내주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해괴한 풍문이 돌 정도로 온갖 의혹과 불신이 쏠려있는데도 공 교육감이 해명 없이 ‘내년 3월 개교’를 강행하는 것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고도 교육감 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너무 구차하고 뻔뻔스러운 것 아닐까.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서울시민 전체가 지루하고 역겨운 ‘공정택 일병 구하기’를 계속 관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사교육이 공교육 휘두르나

공 교육감은 지금이라도 반나절 만에 말을 바꾸게 된 경위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심의보류’ 결정이 내려진 뒤 ‘3월 개교’ 발표가 나오기까지, 그 짧은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말을 나눴는가? 느닷없이 말을 바꾼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가? 학원관계자들로부터 국제중 관련 압력이나 청탁이 있었는가? 공 교육감은 스스로 밝혀야 한다.

교육감으로서 처신의 적절성도 문제려니와, 그로 인해 서울교육 전체가 사교육의 먹잇감이 되어 학부모와 학생을 제물로 바쳐야 명색이 공교육의 수장이 학원 돈으로 선거를 치러 당선됐으니, 미확인 풍문이 도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공 교육감에게 남은 카드는 거의 없다. 이제라도 선거과정에서 있었던 선거자금 관련 모든 의혹을 밝히고 유권자인 서울시민의 판단을 구해야 옳다. 만일 끝까지 모르쇠로 버티며 뭉그적거린다면 서울시민이 공 교육감의 진퇴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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