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단어이다. ‘기성’이 쳐놓은 안일과 식상의 울타리를 부수고 나타나기에 새로움은 늘상 기대라는 접미사를 달고 다닌다. 비록 설익어 떫은 맛이 우러난다 해도 풋풋한 내음과 상큼한 맛을 선사하기에 새로움은 희망의 전령사로 언제나 환영받아 왔다.

박시백씨. 96년이 반환점을 돌 때쯤 홀연히 나타난 그에게 가슴 부푼 기대를 가졌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이름 석자라도 알고 있는 사람 찾기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알짜배기 신인이기에 그가 기성 만화계에 던져줄 참신한 충격파를 맘껏 부풀어진 가슴으로 기다렸었다.

두 달반. 그가 그리는 한 컷, 한 컷의 만평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부풀대로 부푼 가슴은 구멍 뚫린 풍선마냥 조금씩 쪼그라 들어간다. 참신한 발상도, 날카로운 시각도, 독특한 화풍도 보이지 않는다. 기성품과 나란히 서기 위해 애쓰는 흔적만 배어나온다.

7월 4, 10일자 그림판에선 새로움이 응당 내보여야 할 패기가 엿보이지 않는다. 정리해고제와 성폭행을 소재로 삼은 이 만화에서 박씨는 필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행여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를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증과 소심증이 그려넣은 사족인 셈이다.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을 도마 위에 올린 6월 25일자 그림판과 자민련의 동요를 그린 7월 2일자 그림판은 기성 만화와의 차별성은 고사하고 발상법 빌려오기의 의혹마저 안겨주는 것들이다. 카페에서 건너편 여자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윙크하는 구성은 박씨의 전임자인 박재동씨가 즐겨 쓰던 방식이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묘사는 민주당의 복잡한 당내 사정을 묘사하기 위해 한 시사만화가가 여러 차례 애용한 것이다.

세상사를 꿰뚫는 날카로운 안목도 쉽게 찾을 수 없다. 전·노 일파에 대한 검찰 구형을 소재로한 그림판(8월 6일)에선 냉소가 지나쳐 억지로 흐르는 감이 적지 않고, 대통령의 휴가를 소재 삼은 7월 27일자 그림판은 그 게재 이유를 찾기 힘들만큼 두리뭉실한 내용이다. 뿐만 아니다.

하룻밤 사이에 인천지검의 세도 적발이 찬사에서 비난으로 유턴하는 혼란상(7월 23, 24일)을 보여줬는가 하면, 쌀 약정수매를 문제 삼으면서 대북 쌀 지원을 곁다리로 끼워넣는 바람(6월 15일)에 초점을 무디게 만들기도 했다.

사족격의 설명, 참신하지 않은 발상, 무딘 시각, 여기에 컷마다 조금씩 다르게 그려지는 캐리커처까지 덧붙인다면 박씨의 두 달 반은 그리 성공적이라 평할 수 없게 된다. 물론 긴 호흡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조금씩 구축해가는 시사만화가에게 두 달 반은 그저 몸풀기에 불과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매일 완성품으로 신문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두 달 반은 그리 짧지만은 않은 기간이다. 그러기에 몸풀기는 짧으면 짧을수록, 떫은 맛은 빨리 털어낼수록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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