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8·15행사를 전후해 벌인 시위가 하한기 신문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총련 시위를 다룬 신문보도는 시위의 폭력성과 시민 불편 강조쭭 한총련의 이적성 부각 쭭 공권력 개입 촉구로 에스컬레이트됐다.

한총련의 올해 통일 행사는 한총련측의 행사 강행과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이 팽팽히 맞서 쌍방의 충돌이 어느 정도 예상됐던 사안이다. 시위대와 경찰의 첫 충돌 사실을 13일자 사회면에 보도하는 데 그쳤던 각 신문의 논조는 그러나 14일자를 기점으로 급변했다.

대부분의 신문은 우선 ‘폭력 얼룩 비난만 산 축전’(경향), ‘도시 게릴라식 난동’(동아), ‘학생인가 게릴라인가’(서울), ‘명분은 통일대축전 행사는 폭력대시위’(중앙) 등의 제목으로 시위의 폭력성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러나 시위의 과격화를 부추긴 당국의 원천봉쇄에 대한 배경 설명은 생략됐다. 각 신문은 폭력성이 순전히 일부 학생들의 ‘불온한 의도’로 예정됐었다는 식의 보도로 일관했다. 학생부상자가 1천여명, 경찰 부상자가 5백여명에 달한다(경향)고 전하면서도 대부분의 신문사진들은 특히 경찰 부상자에만 앵글을 맞추는 ‘외눈박이 보도’로 일관했다.

경찰은 행사가 시작되기 며칠전부터 연세대 주변에 2천여명의 병력을 풀어 예비검속을 벌였으며 14일 오후 단행된 진압작전은 6천여명의 병력과 헬기 11대, 각종 중장비가 동원된 ‘사상 최대규모’였다. 한총련 지도부가 자진해산을 발표한 이후에도 경찰은 17일 오전 현재까지 행사장을 ‘밀봉’하며 시위학생을 ‘토끼몰이하듯’ 몰아세우고 있다.

사실보도의 편향성은 사설과 해설을 통한 의미부여로 확대됐다. 대부분의 신문은 한총련의 이적성을 새삼 돋을새김하면서 시위학생들을 당장 뿌리를 뽑아야 할 ‘체제 전복 세력’으로 규정했다. 일부 신문은 시위학생들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한 패거리’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조선노동당 재남 행동대원’ ‘김정일의 충실한 하수인’ ‘북의 직계부대’(이상 조선), ‘북한 정권의 꼭두각시’ ‘북한 대남 전략의 앞잡이’(이상 한국) 등으로 지칭했다.

특히 조선은 ‘신촌사태의 본질’ 제하의 14일자 사설에서 이번 시위가 “공권력이 손 쓸 수 없는 아노미 상태로 몰고가려는 전술”이며 “이 진공상태야말로 볼셰비키 전략가들의 풍성한 어장”이라고 표현했다. 조선 사설은 이어 “그들(한총련)은 갈 데까지 간 확신범들이고 대한민국을 떠나, 대한민국을 콩가루로 만들려는 쪽의 동지가 된 지 오래”라며 다른 신문과 차별성을 보였다.

그러나 조선을 비롯한 많은 신문들의 보도는 정작 시위학생들의 주장과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은 외면했다. 수많은 학생과 진압경찰을 또 다시 거리로 내몬, 우리 시대의 통일 논의의 폐쇄성과 모순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회피하고 시위 양상에 대한 보도와 이적성 시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해마다 8월이면 온국민이 함께 앓는 ‘통일 몸살’이 일부 ‘불온한’ 학생들 때문인가. 또 1만여명에 달하는 ‘좌경 폭력세력’을 척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16일 현재 경찰에 연행된 시위학생 1천5백여명 가운데 구속영장이 신청된 학생은 32명. 경찰 예상대로 구속학생이 1백여명선에 달한다 해도 전체 시위학생 1만여명을 싸잡아 비난했던 신문과 정부의 요란한 한 목소리에 비하면 ‘한줌’에 불과하다. 몇몇 학생에 대한 영장은 벌써 법원에서 기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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