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늘 불온하다. 왜? 문화는 늘 새로움을 쫓으며, 그 새로움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일종의 충격을 노골적으로 의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화의 그 이모저모를 나날이 전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일종의 ‘천일야화’일 수 밖에 없는 문화면은 어떤가.

신문사 편집국 밖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우선 부정적이다. 가령, 언론의 문화보도 문제점을 특집으로 다룬 <신문과 방송> 7월호(한국언론연구원 펴냄)는 과다한 지면경쟁으로 지면 메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신문 마다의 개성없는 문화면과 기자·데스크의 전문성 결여 등을 내세워 “개선 필요”라는 원론적 차원의 답을 이미 내놓고 있다.

단순 정보안내를 탈피한 꾸준한 심층보도와 분야별 전문기자 발굴·육성 등을 질적 개선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 문화부 기자들의 목소리는 이와는 다르다. 원론적 지적은 ‘잘 작성된 모범답안’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다루는 것을 생명으로 삼는 신문이 정작 그렇게 새롭지 않은게 문제”라는 한 기자의 지적은 곱씹을만 하다.

무엇보다 문화부기자가 되기까지의 문제. “최근들어 개선되고 있지만 부서 자체에 등급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문화부는 낮은 곳이다. 또한 여기에 여성전용이라는 성적 차별도 암묵적으로 작용한다”는 5년차의 한 여성기자의 말은 편집국 내에서의 문화부 위상을 웅변한다. 안에서는 낮고 작게 취급하면서 밖에서는 크고 뛰어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라는 셈이다.

전문성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기자에게 가장 우선되는 것은 전문성 보다는 종합성이라는 시각이다. 어느 하나만을 잘하는 것보다는 여러 영역의 일들을 잘 해내는 것이 기자의 전형에 보다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특정한 영역에 특장을 보인다면 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보다 순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문화부에서만 10년 경력을 채운 한 기자는 “데스크들의 마인드가 안돼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들 문화부기자들이 현재의 문화면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지면을 메우기에 급급한데다 이질적인 여러 장르를 동시에 떠맡아야 하는 부담 등을 이기지 못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항변아닌 항변은, 문화면과 문화부 기자들에 제기되는 문제는 결국 ‘신문문화’ 전체의 문제이지 신문‘문화면’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8등신(八等身)은 균형의 아름다움이지 특정부분의 두드러짐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만의 뛰어남은 차라리 기괴함에 가깝다. 그래서 문제와 진단은 다시금 시작된다. “신문, 무엇이 문제인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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