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은 아름답다. 그 실험이 치열한 장인정신과 연결될때 감동은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KBS <신TV문학관>이 이 두개의 언덕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절제된 영상언어, 분명한 주제의식을 통해 <신TV문학관>은 한 편의 빼어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연출자의 작가의식은 이 프로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결코 설명하려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게 만드는, 그러나 주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배치하는 연출자의 치밀함이 읽혀진다. 거의 1분마다 반복되는 억지 해프닝과 과장연기의 짜증스러움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다는건 적지않은 위안이다.

지난 5월 첫 편 ‘길 위의 날들’에 이어 이달 8일 방영된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는 공을 들인 프로그램과 대충 만든 프로그램의 거리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길 위의 날들’이 영상미의 진수를 표현했다면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는 침묵의 대사를 통한 여백의 미를 보여줬다. 갈고 다듬은 정갈함이 고스란히 전달돼 온다. TV 앞을 잔잔한 여운과 함께 떠날 수 있다는건 여가의 대부분을 TV에 의존하는 서민들에겐 축복 그 이상이다. 무시당하던 시청률 경쟁의 대상에서 ‘주권’을 가진 시청자로 대접받는 즐거움도 있다.

KBS는 이 프로에 공을 들였다. 첫편 ‘길 위의 날들’에 2억원을 썼고 이번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에는 1억6천만원을 들였다. 파격적인 제작비지만 효과는 그 이상이다. 지금은 빛이 바랜 <열린 음악회>의 공영성 이미지가 <신TV 문학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TV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에 대한 실험정신과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겠다”는 야심에 대해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신경쓰지 않겠다”던 시청률도 상종가를 기록하는 망외의 소득을 올렸다. 30.1%로 지난주 방영된 전체 프로그램중 4위를 차지한 것이다.

<신TV문학관>의 또 다른 성과는 우리 방송의 제작역량이 ‘수준급’임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프로듀서들을 시청률이라는 공룡에 짓눌리게 하지 않고, 적절한 지원만 해준다면 외국 유명영화나 프로그램과 당당하게 경쟁할 프로그램을 내놓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시켰다. 그런 점에서 KBS 고위 경영진이 “TV문학관 제작비가 너무 많다”며 삭감을 지시했다는 설은 우려를 넘어 위기감마저 느끼게 한다. 단견도 이만저만한 단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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