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공화국의 언론환경 변화들 가운데 1987년 정기간행물법 제정과 신문발행의 자유화는 신문시장에 일대 전환기를 가져다 주었다. 신문시장에의 진입을 제한하던 장벽이 무너지면서 신문 수는 창복간 붐을 타고 크게 늘어났다. 제 5공화국에서 모두 28개였던 전국의 일간지는 92년말까지 무려 1백 12개로 급증했다. 그 결과 서울과 지방에서는 기존 신문들 중심의 시장독과점 형태가 사라지고 신규등록한 신문들과의 경쟁체제가 비로소 형성되었다.



그러나 신문 수가 한꺼번에 폭증했지만, 독자나 광고시장이 이것을 충분히 수용할 만한 시장여건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문시장에서 전체 독자의 수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광고시장의 경우도 방송광고시장의 제한과 경기활성화에 따른 대기광고물량이 많이 남아있던 상태였지만 신문 수의 급증세를 계속 감당해낼 수 있는 규모는 아니었다.

결국 이같은 신문 수와 신문시장 규모간의 불균형 상태는 향후 시장경쟁을 불가피하게 격화시킬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되었다. 제한된 독자와 광고시장을 둘러싸고 이것을 지키려는 기존 신문들과 새로 진입하려는 신설신문들 사이에서 사활을 거는 시장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신문시장에서 자유경쟁이 시작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신문카르텔체제가 무너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25년간 시장경쟁을 제한했던 각종 담합 요인들은 이제 불필요해졌고 또 불가능해졌던 것이다. 특히 신문지면 수와 발행체제의 변화가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이제 그 결정을 신문사의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언론상황이 온 것이다.

이로인해 시장경쟁의 첫 걸음은 신문지면 수의 증가, 즉 증면경쟁부터 시작하여 곧이어 휴일판과 부록판 발행, 지방동시인쇄, 석간지의 조간발행 전환 등으로 이어지는 무한경쟁의 궤도를 밟으면서 신문카르텔의 완전 붕괴를 주도해 가기 시작했다.

과거 신문지면의 증가는 1962년에 단간제 1일 8면 발행에서 시작해 1980년 1일 12면, 1988년 1일 16면 발행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같은 발행지면수의 제한은 물론 역대 정권의 언론통제 목적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문업계의 담합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증면경쟁은 본격적인 시장경쟁과 신문카르텔 붕괴의 출발점이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1989년 7월 한국일보의 휴일판(월요판) 발행과 10월에 조선일보의 1일 20면 발행으로 촉발된 증면경쟁은 1990년 3월부터 대다수의 중앙지들에 확산되면서 주 1회 휴간이 없어지고 연중무휴 1일 20면의 발행체제가 형성되었다. 이와 동시에 주요 중앙지들은 경쟁적으로 주 1회의 특집부록판을 발행해 지면수를 다시 늘려가기 시작했다. 또 1990년 7월부터는 한국일보를 필두로 주요 중앙지들은 모두 1일 24면의 발행체제에 들어갔다.

이처럼 증면경쟁이 무한궤도를 그려가는 가운데 1991년 12월 조간지인 한국일보가 석간을 발행하면서 이른바 ‘조석간 복간제’를 30년만에 부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조석간 동시발행은 다른 신문들에까지 확산되지는 못했고, 얼마후 자진 폐지되어 버리는 결과를 맞이해 무한증면경쟁의 실패작으로 기록됐다.

이와 함께 증면경쟁의 전개와 더불어 중앙지의 지방동시인쇄체제가 경쟁적으로 전개됐다. 1991년 5월 중앙지의 지방분공장 설치와 인쇄허용 여부에 관한 유권해석에 따라 한국일보가 그해 8월 창원 분공장을 가동함으로써 서울과 지방에서의 동시인쇄시대가 막을 올렸다. 그 직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중앙지들도 지방에 분공장을 설치하거나 지방지와의 위탁인쇄 계약을 통해 동시인쇄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전국동시인쇄 체제로 중앙지의 지방시장 침투가 가속화 되었다. 지방판의 배달시간을 대폭 단축시키고 지방에서도 서울과 동시에 중앙지를 받아본다는 이점을 내세우면서 일부 중앙지는 인쇄공장과 지방사옥의 신축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4∼5개의 신문들이 경쟁하는 열악한 지방신문 시장여건을 더욱 악화시켰다. 또 중앙지들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수도권 지역과 중부권의 독자층을 대상으로 신문물량을 확대하기 위해 서울 인근지역에도 분공장을 설치해 갔다.

한편 증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간신문시장이 경쟁의 주된 전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조간지가 석간지보다 열독률이나 광고효과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은 1988년에 신설된 한겨레신문이나 세계일보가 조간지로 출발한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91년 4월에 석간이던 경향신문이 조간으로 전환하고 또 이 무렵 동아일보가 조간 전환을 준비하는 등 조간신문시장에서의 경쟁은 불보듯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무한경쟁이 전개되면서 경쟁양상은 물량경쟁과 과당경쟁의 성격을 띨 수 밖에 없었다. 일부 대신문은 경쟁우위전략에서 과대한 물량투자를 계속하고, 다른 신문들은 경쟁대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출혈경영과 폐간까지 감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결과 신문시장에서는 대신문과 군소신문간에 부익부 빈익빈이 극대화되는 파행적인 모습이 전반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많은 지방지를 포함해 신설신문들은 적절한 판단없이 시장진입을 한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무한경쟁의 전개속에서 그들은 막대한 비용투자의 부담을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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