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위가 한고비를 넘기고 있다.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이 끝나고 6월10일을 기약하고 있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 상황은 그냥 같은 말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끝나버릴 공산이 크다. 이명박 정부는 본인들이 주장해온 것과 다른 태도를 지난 시위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말하자면, 본인들이 표방한 시장-실용주의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시장-실용주의의 핵심은 바로 공평성과 탈권위적 소통인데, 이들은 전혀 이런 모토를 실천할 의지나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이들은 여전히 이번 시위를 불순세력의 선동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시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태도에서 유추해봤을 때, 앞으로 나올 정부의 대응은 불을 보듯 빤하다.

이들은 촛불시위대의 폭력성을 더욱 부각시켜서 진압을 시도하면서 현 정부에 대한 중간계급의 실망을 해소시켜주고자 노력할 것이다. 아무리 촛불시위가 격화해도 중간계급이 절실하게 '정권 퇴진'을 바라는 건 아니다. 민주노총과 화물연대, 그리고 대학생들이 촛불시위에 동참했지만, 촛불시위의 기본 성격은 도시 중간계급의 불안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안은 국가라는 공공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유사시에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생존본능에 가까운 가족주의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불신과 본능이 만들고 지지해온 것이 부동산과 교육 불패라는 신화이다. 부동산 투기와 학벌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거부할 수 없는 이 강고한 판타지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흑묘도 백묘도 아닌 삵

따라서 앞으로 촛불시위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촛불집회는 허용하되, 폭력사태는 엄단하겠다는 말은 이런 이중성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이명박 정부는 고전적인 통치방식을 고수하는 세력이라는 걸 알 수가 있다. '국민들'은 도대체 지난 선거에서 어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는지를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현 정부의 무능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흑묘 아니면 백묘라고 생각했던 유권자의 실용주의는 '대통령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뀌는' 한국 사회의 속성 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흑묘와 같은 '기능'을 가진 백묘가 아니라, 생긴 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종에 속하는 삵이었던 것이다. 이 삵은 쥐 잡을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고 자기 사냥 다니기에 바쁜 짐승이라는 사실이 지난 3개월 동안 확실하게 드러났다.

말하자면, 현 정부의 무능력은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의 무능력에서 기인한다기보다, 이들의 '이념체계'가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가 코드로 세상을 파악했다면, 이들은 이념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대화가 있을 수가 없다. 이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수사학은 보수주의자들을 위한 립서비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이들의 발언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복권하는 건 일종의 정언명령처럼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 충돌에서 중간계급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현 정부의 운명은 갈릴 것이다.

불안한 중산계층의 향배가 칼자루

촛불시위대 사이에서 폭력과 비폭력 논쟁이 불거지는 건 이런 상황 인식에 따른 본능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본능만으로 현실 정치의 전략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캐나다의 저술가 나오미 클라인은 반세계화운동을 다룬 글에서 지도부 없는 포스트모던 대중운동의 한계에 대한 목격담을 진술한다. 세계정상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들은 뚜렷한 지도부 없이 행동했는데, 모여서 시위를 할 때까지는 좋았지만, 구체적인 전략 목표나 현실 정치의 대안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자율적'으로 관철시킨다는 명분으로 자진 해산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번 촛불시위를 두고 여러 가지 이론적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 남는 문제는 클라인도 지적하고 있는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분명히 촛불시위의 형태는 새롭지만, 그 내용은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클라인이 지적하는 포스트모던 시위의 한계가 드러난다. 과연 촛불시위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지, 귀추를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릴 때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해서 한 동안 지구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문화의 불모지 부산에서 자랐지만 문화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머리가 굵어진 뒤에 남들 하지 않던 문화를 공부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게 되었다. 주로 하는 일은 주변에 잡다한 문화현상들을 이론의 체로 걸러서 이것 저것 퍼즐을 맞추어보는 일이다. 공부해서 남 주자는 모토로 오늘도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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