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권영해 부장의 발언 파문은 그 보도경위와 발언내용의 충격성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비보도를 전제로 얘기한 기밀이 밖으로, 그것도 일본언론에 유출된 경위도 의아하지만 권 부장의 설명내용 역시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익 차원에서 진행된 얘기가 어처구니없게도 일본의 한 대중 잡지에 내용 전체가 전재돼 사실상 ‘공식화’된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황장엽 조선(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 경위에 대한 권영해 안기부장의 배경 설명은 상당히 상세하고도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안기부측의 설명에 따르면 “할 말 안할말 다했다”고 한다. 안기부측은 사전에 권 부장이 비보도 요청을 했고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여러분 동의하시죠”라며 전체적인 의견을 구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24일 일본 동경에서 발매된 ‘주간현대’에 그대로 전재됐다. 당일 그 자리에 참석한 누군가가 이날 오고 간 내용을 발설한 것이다. 주간현대 보도는 상당히 놀라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황장엽 비서의 망명 직후 한국 정보기관의 움직임, 안기부의 대북 첩보 활동 등이 여과 없이 실렸다.

주간현대 보도 내용에 대해 안기부가 지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정보기관의 장이 비보도를 전제로 예기한 것이 곧바로 일본언론에까지 전달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황 비서가 중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남북간의 첨예한 외교전이 전개되고 있는만큼 주간현대 내용을 전재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14일 권 부장의 설명 내용 가운데 관심의 초점은 황장엽 비서의 망명을 한국의 정보기관이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의 여부다.

이날 권 부장은 이 질문에 대해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주간현대’ 보도에 따르면 권 부장은 “우리들은 모든 측면에서 그들을 분석, 조사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임무다.

황비서 망명 같은 중요한 것을 아는 것은 당연하다. 황 서기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캐치했다. 황 서기는 북한의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는 것. 이와 관련 주간현대는 안기부가 황 비서의 망명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황서기가 일본이 아닌 중국으로 망명한 이유에 대해선 “외국에 나갈수 있는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세미나 참석차 들른 일본에선 직간접적인 감시를 받았지만 북경은 의외로 감시가 허술했다. 양국의 대응이 다른 것이 한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황 비서의 정보가치는 높이 평가됐다. 권 부장은 대북 정보와 관련 우리쪽이 취약한 것이 인적정보였다며 이런 점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간현대는 이밖에도 황비서 망명이 조선(북한) 정권에 미치는 영향, 망명 과정 등을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한편 안기부는 당일 한 참석자가 권 부장의 발언을 녹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도 내용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녹음을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쓸수 없는 내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극도로 불쾌한 감정도 감추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정보기관의 장이 비밀을 전제로 얘기한 것을 공개하면 그 파장
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중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판단이다.

기사 게재 경위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기사를 쓴 다찌가와 기자는 ‘한국통’으로 수시로 한국을 드나들고 있다. 황장엽 비서 망명 사건이 터지자 예의 한국을 들어왔고 기자들과 당국자들을 방문해 취재활동을 벌였다.

특히 이 기자는 기사에서 한 신문사 기자를 실명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때 권 부장 간담회 발언 내용을 유출한 것이 이 기자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으나 해당기자는 “그러한 내용을 물어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얘기한 것 밖에 없다”며 이같은 추측을 부정하고 있다.

일본의 출판 재벌 강담사에서 발행하는 ‘주간 현대’는 한때 1백만부에 육박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최근에는 부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번 권 부장 비밀 발언 파문은 발언 내용이나 보도 경위 모두 흥미적 요소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파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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