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공정치범 명예회복협의회’(공동대표 정해숙 박정석 박재순)가 아픈 역사의 기록을 펴냈다.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는 제하의 이 책은 5공의 대표적인 반국가단체 조작사건으로 손꼽히고 있는 아람회, 오송회, 한울회 관련자들의 수기를 담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일부 언론과 정치인이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증언은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이 선량한 우리 이웃들의 일상을 얼마나 파괴하고 삶 자체를 황폐화시켰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아픈 역사는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게 해준다. 모두 11명의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이 책에서 역사의 현재성을 말해주는 대목이 등장한다.

‘아람회’ 사건에 연루됐던 김난수 전 육군대위가 ‘5공 군 검찰관 안중위에게’ 띄운 서한을 보자. 당시 현역 대위였던 김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피고인으로 기소했던 안 중위는 현재 대검중수부 2과장인 안종택 검사. 김씨는 묻는다.

“자네는 광주민중항쟁을 민중봉기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하고 광주학살의 책임자 전두환을 처벌하여야 된다는 나를 구속기소함으로써 전두환 정권에 충성을 다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은가. 안중위,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네는 참으로 전두환에게 ‘의리’를 지키는 사나이가 될 걸세.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망월동 묘역 앞에 무릎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되지 않겠는가.” 안 검사는 과연 뭐라 답변할까.

저자들이 경험한 반국가단체 조작의 스토리는 대동소이하다. 어느날 갑자기 영장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정보기관에 끌려가 수십일간의 혹독한 고문끝에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둔갑한다. 아람회 사건은 김난수씨의 딸 백일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5공의 부당성을 얘기한 것이 빌미가 돼 김씨와 그 동창생들이 간첩으로 조작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오송회’사건은 교육자적 양심에 충실했던 현직 교사들을, ‘한울회’사건은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종교적 양심을 구현하고자 애쓰던 목회자들에게 간첩이란 ‘덫’을 씌었던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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