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 직업병’은 ‘현재진행형’이다. 직업병 제조공장 원진 레이온은 이미 폐업한 지 4년이 돼 간다. 그러나 94년 44명, 95년 1백78명, 96년 97명, 폐업 이후 3백19명이 직업병 판정을 받는 등 직업병 환자들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폐업 이전에 판정받은 3백18명까지 합치면 현재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는 6백37명에 달한다. 80년부터 공장이 폐업한 93년까지 원진레이온 원액이탄부에서 근무했던 조규운씨(46)도 이 가운데 한사람. 장애등급 6급을 받은 조씨는 동맥경화에다 고혈압 증세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늘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나 답답증은 병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28명이 세상을 떠났고 기독교병원에는 10여년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5명의 동료들이 누워있다. 그나마 팔, 다리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신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계속 커가기만 하는 정현이와 광현이 두 아들을 보고 있자면 가슴은 한도 끝도 없이 미어진다.

조씨는 다른 직업병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월 1백만원의 산재보험금(평균임금의 70%)을 받지만 4가족의 생활비로 턱없이 부족하다. 아픈 몸을 끌고라도 돈을 벌어야지 생각을 해보지만 그럴 수도 없다.
직업병 판정을 받지 않은 원진레이온 사람들조차 기업의 채용기피 대상이 되는데 자신과 같은 환자를 채용해 주는 업체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산재혜택을 받는 직업병 환자는 법적으로 취업도 사업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적발되면 휴업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되거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권씨를 비롯한 직업병 환자들은 요즘 이조차 못받게 될 지 모른다는 소식에 아픈 가슴을 더욱 졸이고 있다. 정부가 산재보험의 민영화를 추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산재보험을 사회보장 차원이 아닌 시장논리에 맡겨 버리겠다는 것이다.

조씨를 비롯한 원진레이온 출신 노동자들에게 정부는 불신덩어리다. 정부가 원진직업병 전문병원건립을 약속했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은 직접 나서 원진직업병 환자의 75%가 살고 있는 구리시와 남양주시에 종합병원규모의 산재전문치료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원진레이온의 법정관리인이었던 산업은행이 지난해 2월 공장부지를 매각하여 남은 1천6백3억원 가운데 1백80억을 병원설립비용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다 앞으로 계속 발생할 직업병 판정환자에게 1인당 3천5백만원의 재해위로금을 지급하기 위해 산업은행에 추가로 2백30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원진피해자협회’는 2004년까지 최소한 7백20여명의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조씨는 사진기자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모습을 많이 찍어가기는 했지만 정부와 사회는 자신들에게 좀처럼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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