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결말이었다. 한국 외교관 가운데 최초로 외국에서 피살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최덕근 영사 살해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10월 1일. 이 사건은 북한의 무장 잠수함 남파사건(9월 18일) 이후 곧바로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을 보는 언론의 눈은 단순했다. ‘조선이 저지른 독침 테러’라는 것이 일관된 시각이었다. 근거는 대략 세가지였다. 피살사건이 터진 다음날 공교롭게도 조선이 잠수함 승무원 ‘송환’을 거절한데 대해 ‘보복’하겠다는 발언이 터져나왔다는 점, 당일 현장에 아시아계로 보이는 3명의 남자가 있었다는 점, 해당지역이 남북한간에 치열한 정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등을 주요한 근거로 제시했다.

최 영사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대부분의 언론은 정부 당국자와 러시아 수사관·검시관 등의 말을 빌어 조선 공작원에 의한 조직적 테러로 단정했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 각 언론사는 범인으로 보이는 조선인들을 연행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뉴스를 앞다퉈 전파와 지면을 통해 보도했고 일부 언론은 심지어 범인이 검거됐다는 보도까지 내 보냈다.

이 과정에서 건설노동자나 벌목공 등으로 블라디보스톡 주변에서 생활해온 조선인들은 한국 기자들의 집요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일부 노동자들은 한국 방송을 통해 거주가 수상한 사람들로 전파를 탔다. 외무부가 나서 “아직까지 북한이 연계됐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추측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한 방송사는 살인 사건과 관련 현상수배를 받고 있던 다른 혐의자를 마치 최 영사 살해범 몽타쥬인양 버젓이 보도했다가 다른 기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현재 최덕근 영사 살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공산이 크다. 한국측은 최근까지도 이정빈 주 러시아 대사가 러시아 검찰 당국을 10여차례 방문해 사건 해결을 촉구했지만 러시아의 반응은 한 마디로 미온적인 상태이다. 서울신문 유 민 모스크바 특파원은 “미제 사건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남북한을 사실상 등거리외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다 러시아 검찰 자체가 수사의지가 없다”고 밝혔다.

최영사 사건 보도 과정에서 언론은 지나치게 흥미 관점에서만 접근했다. 지역의 특성상 탈북인들이 많고 최 영사의 신분을 둘러싼 문제도 감안했어야 했다. 조선(북한)측의 보복으로 단정하고 언론과 독자들이 설정한 방향으로 언론 보도를 몰고 갔다.

최 영사 피살사건은 단순 살해 가능성은 애써 무시하고 ‘심증’만을 근거로 ‘확증’을 짜맞추려 한 것이나 숱한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쳤을 뿐 그것에 대한 명쾌한 해명은 끝내 해내지 못한 점은 다른 미스터리 보도와 닮은 꼴로 기록될 듯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