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특종’을 하고도 공작설에 휩싸이는 것일까. 무엇이 기사경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문경쟁으로 치닫게 하는가.
최근 일부 언론보도를 둘러싼 진위 논란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보 보도 과정에선 음모설이 제기되고 황장엽 망명 보도는 친필 기록의 사실 여부가 ‘의혹’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 이에 앞서 김경호씨 일가 망명 사건에선 일기장 논란이 벌어진바 있다.

일련의 이같은 과정은 한국언론의 취재 환경과 보도태도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조선일보의 음모설 파문은 일단 익명성이 만연돼 있는 한국사회와 언론보도 풍토가 그 주범으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검찰수사 과정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한국 검찰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보단 권력의 눈치보기에 바빴다. 이번 한보비리 수사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검찰의 이같은 정도를 벗어난 수사 행태로 수사내용을 둘러싸고 언론과 소모적인 숨박꼭질을 되풀이해야 했다. 이같은 관행은 결과적으로 ‘소문’과 ‘설’을 낳는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한보수사과정에서도 검찰은 소환자 명단, 정태수 총회장의 진술 내용은 철저히 기밀에 부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신문은 주요 정치인의 소환 사실 자체도 지면에 반영하지 못한채 ‘물’을 먹었다. 검찰 기자들은 소환자 명단이라는 지극히 기초적인 수사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검찰출입 기자의 경우 거의 모든 시간과 정력을 허비해야 했다.

한 검찰기자는 “검찰이 매일 2시 30분에 정례 브리핑을 가졌지만 알맹이 없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검사의 말을 뒤집어보고 행간을 더듬는 작업을 과거처럼 또 해야만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검찰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고 비밀과 함구로 일관하는 한 기자들의 소문 추적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물론 검찰도 할말은 있다. 우선 수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수사 진행 상황을 시시콜콜히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피의자의 인권이라 하더라도 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마당에 범죄 혐의마저 확정되지 않은 참고인 조사 상황등을 밝힐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언론의 무차별 보도로 이들의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수사 방향 자체까지도 좌지우지하려는 언론을 도대체 믿을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은 검찰의 수사 과정 자체가 보다 개방되고 언론이 이에 걸맞는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일선 기자들의 주문이다.
언론의 일상화된 익명보도 관행도 ‘음모설’을 잉태하는 한 요인이다. 줄이은 특종기사를 터뜨린 조선일보의 경우 만일 어느 한 사안이라도 기명으로 기사 출처를 밝혔다면 이른바 ‘음모설’은 일거에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정부의 사정 고위관계자’ ‘사정당국과 검찰’ ‘검찰’ 등으로 분명한 기사 소스를 밝히지 않았다.

이러한 관행은 물론 현실 여건상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 사회환경 자체가 투명하지 못하고 직무상 취득한 정보등을 공개할 경우 그 사회에서 거의 매장당하다시피하는 우리나라의 정관계및 경제계 풍토에서 취재원을 노출하고 이번 조선일보의 특종과 같은 정보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다른 언론사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가능한 한 취재원을 공개하고자 하는 언론의 노력은 포기될 수 없다. 익명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특성과 이것을 너무나 당연시해온 언론의 취재및 보도 관행이 ‘익명성’ 뒤에 숨은 ‘언론플레이’를 가능하게 했던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이 익명보도의 현실적 불가피성에도 불구하고 그 취재 경위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증폭시키면서 언론보도의 기본적인 신뢰성에 대해서 언론 스스로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환경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일회적인 사건성 기사에 매달리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치권의 사정수사 여부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연루 의원 명단에 골몰하는 한 이러한 소문경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본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나무를 보기보단 숲을 보려는 노력이 전개됐다면 이번과 같은 소문경쟁은 발붙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연이은 조선일보의 ‘한보특종’의 음모설 파문은 한국 사회의 투명성을 제고하는데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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