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 했으면 안기부까지 말렸을까.”

지난 19일 안기부는 각 언론사에 ‘오익제 월북사건과 관련하여’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돌렸다. 전체적으로 국민회의가 오씨의 월북을 ‘기획입북’이라고 표현한 점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던 이 보도자료는 말미에 조심스럽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언론의 추측보도 자제를 당부했다.

안기부는 “앞으로 오익제 월북사건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 더 이상 근거 없는 발언을 자제해 줄 것과 언론도 추측보도를 자제할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이 귀절은 안기부가 오익제씨 관련 언론보도에 어느정도 곤혹스러워하는지 잘 드러내주고 있다. 기존의 공안사건 보도가 대개 그러하듯 이번 오씨 월북 과정에서도 각 언론은 공안당국 한 관계자의 표현을 빌어 ‘오씨가 간첩활동을 해 온 혐의가 잡혀 본격적인 자금 추적이 진행중’이며 ‘국민회의 의원과 연계’ ‘김대중 총재 오씨 월북 인지 내사중’ 등 무분별한 보도가 잇따랐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오씨는 국내서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던 도중 황장엽씨 망명사건이 터졌고 황씨 망명 이후 ‘황 리스트’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월북했다는 줄거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이러한 스토리는 공안당국 스스로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언론이 그토록 애용하는 ‘공안당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오씨 월북 사건 수사와 관련 공식적으로 언론에 확인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를 확인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는 설명이다. 개인적인 연을 통해 수사과정을 취재하고 있는 것 같으나 ‘사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뒤 따랐다.

실제로 언론이 제기한 오씨의 간첩 활동 혐의는 흐지부지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안기부는 특히 언론과 정치권에서 ‘황 리스트’에 과잉 집착하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공안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이 공안기관을 내세워 작문성 미확인 기사를 남발하는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는것 같다”며 “이에 대해 내부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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