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1일 비정규직법안 시행을 앞두고 전체 업무 종사자의 40∼50%에 육박하는 방송사 비정규직의 실태와 처우, 고용보장 및 차별철폐 해소 문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방송사에는 상시계약, 한시계약, 임시직, 아르바이트, 바우처, 파견, 도급, 용역, 프리랜서 등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비정규 고용 형태가 고스란히 집약돼 있다. 비정규직 해소에 대한 사회적 의제에 역행하는 방송사들의 행태도 문제지만 구체적인 실상조차 공개하지 않는 점도 따가운 비판의 대상이다.

   
  ▲ 전국언론노조 MBC업무직지부가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피켓을 26일 서울 여의도 MBC 경영센터 출입구에 붙여 놓은 모습. 이창길 기자 photoeye@  
 
방송사는 대부분 계약직에 한정해 자료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 노조가 주장하는 비정규직의 규모, 근로조건, 고용형태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황 파악부터 노사 입장차= 실제로 KBS의 경우 2006년 12월 현재 연봉계약직 404명, 파견 316명, 방송제작보조요원 457명 등 1177명이 회사가 밝힌 비정규직 현황이다. 그러나 노조는 여기에 용역도급 1004명을 합쳐 2181명을 전체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MBC의 경우 계약직, 파견직, 도급직, 바우처, 프리랜서 등을 포함한 비정규직 전체 숫자를 1482명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노조는 1632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회사쪽 집계가 더 적은 이유는 회사가 업무직(상시계약직)을 사실상 고용이 보장된다고 주장하며 ‘정규직’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업무직 임금의 경우도 노조는 동일직종 정규직 대비 40∼50%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회사는 70%라고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가 정확한 자료를 요청하고 있으나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 방송사 인사팀 관계자는 “방송사는 비정규직 현황이 워낙 복잡하고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속사정을 다 드러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소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 KBS MBC EBS는 7월1일 비정규직 법안 시행을 앞두고 계약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나 역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계약직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조와 달리 회사 쪽은 임금부담 등을 내세우며 ‘선별’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별’을 위해서는 정확한 직무분석과 평가기준이 필요한데 회사가 관련 자료를 얼마나 공개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임금격차 해소 시급= 계약직 노동자들은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AD, FD, 구성작가, 카메라보조 등 방송제작 현업에 종사하면서도 해고 위험과 차별을 겪는 프리랜서와 바우처, 임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따라서 이들의 고용안정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도 심각한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프로그램 단위로 계약하는 바우처의 경우 인력풀제를 만들어 표준계약서를 작성한 뒤 언론노조와 방송협회가 교섭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전국언론노조 김성근 조직쟁의실장은 “한꺼번에 단일 호봉제를 도입할 수 없다면 ‘합리적 차이’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고 그 기준은 노동자의 사회적 평균임금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간접고용 형태인 파견과 용역 노동자들 역시 파견회사와 용역회사의 중간 착취 구조로 상황이 열악하다. 따라서 이들은 오래 전부터 방송사를 상대로 업무 자체를 직접고용 형태로 전환해 정규직화할 것을 요구해 왔지만, 회사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사회적 연대 임금’ 가능할까= 그렇다면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정규직에게 돌아갈 몫을 비정규직에게 양보하는 ‘사회적 연대 임금’을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같은 방식은 이미 MBC와 CBS에서 도입했던 전례가 있다.

CBS는 지난 2005년 비정규직 48명 가운데 34명(70%)을 3년에 걸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하면서 정규직 직원들이 임금 인상분 2%를 내놨다. MBC도 지난 2004년 한시계약직 일부를 상시계약직(업무직)으로, 업무직 일부를 연봉직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하면서 정규직 조합원들이 임금 동결을 결의한 바 있다.

▷방송사 ‘경쟁력’ 인식 전환 필요= 그러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대한 정규직의 ‘배려’와 ‘양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지난 25일 노보를 통해 공개한 조합원(응답자 1610명) 설문조사에서 비정규직 처우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대부분이 공감(76.4%)했지만 처우 개선을 위한 양보 용의(52.4%)는 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방송사 노조 관계자는 “계약직 뿐만 아니라 파견, 도급, 바우처 등 다른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접근을 해야 하는데 워낙 광범위한 부분이라 쉽지 않다”며 “그래도 같은 방송사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과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회사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노동비용이 증가하고 경쟁력이 저하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업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키우지 않고 노동비용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운다면 오히려 ‘위기’를 앞당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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