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부도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지난 1월 민주노총 총파업이 한창일 때 돌연 한국노총 탈퇴를 선언, 파문을 일으켰던 한국은행 심일선 노조위원장. 그가 바라보는 이번 한보 부도 사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정경유착 뿐 아니라 전근대적인 금융정책과도 직결돼 있다.

-한보 부도 사태는 금융권에도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줬는데.

“한마디로 코미디였다. 갓 입사한 은행종사자라도 한보의 채무 상황을 보면 절대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주진 않았을 것이다. 외압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한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몇몇 은행장들은 중간에서 돈을 대출해 준 데 따른 수수료를 받은 것이지 그들 스스로 돈을 내줬다고 보긴 어렵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은행장이 부당한 대출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이를 개선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한보 부도 사태와 같은 금융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보다 금융자율화가 선행돼야 한다. 여신 규제 등 각종 전근대적 규제조치를 풀어야 한다. 또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부조리한 대출 관행이 근절되도록 여신심사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은행장이 부당한 대출 압력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고 만약 잘못된 대출이 문제됐을 경우 엄정히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도 금융개혁을 얘기하고 있는데.

“구호 이상은 아니라고 본다.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 등의 개혁 조치가 없는 금융개혁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실제 1년 밖에 남지 않은 현정부가 금융개혁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보 부도 사태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 태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뭔가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매번 큰 사건이 터지면 항상 그렇듯 마무리가 부족했다. 한보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이나 진정한 의미의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등을 차분히 정리해줬으면 한다.”

-한국 노총을 탈퇴한 뒤 최근 민주금융노련준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데.

“한국노총 탈퇴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날치기 이후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을 지켜보면서 노조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했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민주금융노련도 이같은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양심적인 금융권 노조들과 함께 민주노총에 참여하기로 뜻을 모았다. 3월말께는 이번 노동법 재개정 결과와 상관 없이 민주금융노련이 공식 출범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