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정국이 시작되고 신문들이 관련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다. 때마침 한보 자금 수수 관련으로 정치인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신문으로서는 그야말로 한보 기사 사태를 맞고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일련의 기사들에서 ‘깃털에만 치중하고 몸통과 골수는 잠시 잊고 있는 경우’가 많이 보이고 있다. 우선 청문회 자체에 대한 보도에서 말 안하고 버티는 증인을 두고 거물로 표현하기도 하고 정태수·홍인길·김종국 등 증인들에 대해 방자하다, 당당하다, 비굴하다 등으로 스스로 판단해 표현하는 태도가 신문들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가 로비·수뢰·외압·정경유착 등의 죄를 짓고 재판에 임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물론 ‘재판중 무죄추정 원칙’이 있으므로 이들을 무조건 죄인 취급해서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청문회에까지 오게된 근본적인 이유는 제쳐둔 채 청문회장에서 비친 개인적인 태도에 대한 표현에 치중하는 이같은 보도 태도는 문제의 진정한 의미를 제쳐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청문회 지상 중계가 무슨 쇼나 운동경기 해설이 아닌 다음에야 본질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비판이 나왔어야 한다.

다음으로 청문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나타난 청문회 개선 주장에 대한 보도문제를 들 수 있다. 스타 탄생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의 수준에 새삼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문들은 “청문회 왜 하나”식으로 청문회 자체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문제다.

청문회가 만능 열쇠가 아님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해서 무조건 공격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 신문 특유의 ‘조급증’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청문회만 열면 증인들이 모든 문제를 모든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다 불어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가 아닐까.

정치인들에게는 자기 당에 대한 소문을 해명해주면서 상대방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자료를 안겨주고 신문들에게 매일 큼직한 기사를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청문회는 그야말로 말을 들어보는 자리다. 거기서 자기 변명과 함구가 나온다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그렇다고 청문회에 수사기능까지 줘야한다는 주장을 여과없이 그대로 싣는다는 것은 신문들이 차분한 판단을 결여했다는 느낌을 준다. 검찰도 입법부도 모두 수사기능을 가진다면 삼권 분립의 원칙은 어디로 가는가.

오로지 정치적인 주장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여과없이 지면에 게재하는 것은 권력의 원천인 국민에 대한 기만이며 국민과 정치권력·국가와의 계약인 법에 대한 모욕이다. 법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그 법을 만들라고, 그리고 그 법을 다루는 행정부, 또는 권력이 이를 잘못 다루는지를 감시하라고 국회가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신문은 이들 모두를 감시해야할 직분이 있는 것임을 새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한보 정국하에 김수한 국회의장 소환 통보에 대해 신문들이 국회와 검찰의 힘겨루기로 표현한 것도 문제가 많다. 국회의장이라는 자리는 돈을 받는 것에 대한 면책 특권을 가진 자리가 아니다. 힘겨루기라는 겉모습보다 본질적인 돈 수수에 초점에 맞춰졌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신문이 정치인들의 주장을 싣는 선전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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