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화 단체관람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영화는 퇴계로의 '대한극장'에서 상영됐는데, 할머니 댁을 오가는 길목에 있는 그 극장의 벽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영화 간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극장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반공영화' 어쩌고 하는 요란한 선전문구도. 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어린 학생들의 머리통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사 놓겠다는 그 유치하고도 무모한 발상이라니…지금 생각하면 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뉴욕타임스> 특파원 시드니 쉔버그(Sydney Schanberg)가 캄보디아에 가서 취재하다가 자신을 돕던 캄보디아인 동료 디스 프란(Dith Pran)과 극적으로 헤어진 뒤, 고국으로 돌아가 그 동료의 가족들을 돌보면서 자신을 도왔던 그 캄보디아인 동료를 찾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반공 이데올로기의 선전물일 수 있었던 것은 크메르루주(Khmer Rouge)라 불린 공산주의 세력의 잔혹한 학살 만행 때문이다.

'킬링필드'가 반공영화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 

   
  ▲ 영화 '킬링필드' 포스터  
 
1975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크메르루주 치하에 사망자 수는 대략 80만에서 100만 명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들판과 하천을 가득 메운 뼈 무덤을 보여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공산주의 학살자들의 만행에 주먹을 불끈 쥐고 치를 떨 법도 하다. 그 생지옥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자유의 품'에 안긴 캄보디아인 디스 프란이 미국인 시드니 쉔버그와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관객들은 급기야 동서양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우정에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킬링필드'라 불리는 캄보디아 학살은 그 시기를 둘로 나누어야 한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시기는 저 악명 높은 폴포트(Pol Pot)가 이끈 크메르루주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실권을 장악한 론놀(Lon Nol)의 꼭두각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했던 1975년부터 1979년까지에 해당한다. 크메르루주가 이 시기에 1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시민들을 처형하고, 이후 70만에서 80만에 이르는 캄보디아인들이 사망한 것은 모두 입증된 사실이다. 이 영화는 통상 '2기 킬링필드'에 해당하는 바로 이 시기만을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다.

1969년 3월 18일, 미국 대통령 닉슨의 승인을 받은 미 공군 B-52 폭격기가 최초로 캄보디아에 폭격을 시작했다. 1973년 8월 15일까지, B-52 폭격기가 캄보디아에 쏟아 부은 포탄의 양은 무려 54만 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투하했던 16만 톤의 세 배가 넘고, 한국전쟁 기간에 미군이 사용한 49만 5천 톤마저 능가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제네바협약을 위반한 불법 폭격이었다. 죄 없는 수십만 민간인들이 숨지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평생 불구가 됐다.

1973년 6월 19일 캄보디아 폭격 명령을 거부한 죄로 법정에 선 B-52 부조종사 도널드 도슨 대위는 "캄보디아 폭격 임무를 안고 날아갔지만 어디에도 군사 목표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장을 공격 목표물로 삼았다"고 증언했다. 1969년에서 1973년에 이르는 바로 이 시기가 잘 알려지지 않은 '1기 킬링필드'에 해당한다.

미군 폭격에 의해 희생된 캄보디아인들에 대해 주류 언론 일제히 침묵

따라서 '2기 킬링필드' 이전의 캄보디아가 '평온한 땅'이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미 '1기 킬링필드' 시기에 캄보디아인들은 억압과 착취, 학살과 고문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가 미국의 손에 넘어간 후, 미국 꼭두각시 정권의 총수인 론놀의 정부군은 농촌마을에서 무자비한 학살극을 벌였다. "그들은 어린아이의 다리를 잡아 찢는 것으로 담력 시험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 지역에서 살아남아 크메르루주의 병사가 된 사람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행동이었다."

   
  ▲ 시드니쉔버그  
 
그러니 "폴포트주의는 모두가 거기서 잉태된 것이었다." 미국이 없었다면 킬링필드도 없었다. '킬링필드' 신화는 모든 것을 크메르루주에 뒤집어씌우려는 "미국식 음모"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후에 만든 영화 <미션>과 함께 롤랑 조페 감독은 저 역겨운 서양인들의 '더럽고 추잡한 양심'을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무자비한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을 희생시켜 놓고도 미국은 그동안의 관례대로 '부수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시드니 쉔버그가 쓴 캄보디아에 관한 칼럼 45건 가운데 미군 폭격의 희생자들에게 단 몇 마디라도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할 기회를 준 것은 단 3건 뿐이었다. 미국과 국제사회, 그리고 주류언론은 침묵했다.

뛰어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는 '킬링필드'에 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하고 있다. "현대사에 최고·최대 거짓말인 이 미국식 킬링필드의 전설을 끊어버리는 일이야말로, 세계시민사회가 더 이상 미국으로부터 '개죽음'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언이고 엄숙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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