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5년 단임제는 '1987년 6월 항쟁의 기형적 성과물'이다. 군부 장기독재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묶는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문제는 5년 단임제의 세 정부가 결국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2년 5월18일에 작성된 동아일보 사설 <나라 장래 위한 개헌 논의를>의 한 대목이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의 불일치에서 오는 구조적 정치불안정"이라며 "대통령 임기 도중의 국회의원 선거가 중간평가의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정쟁으로 정치불안정을 확대재생산한 측면이 강하다"고 적시했다.

2년 후 정치권에서 다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개헌론이 일었을 때, 동아일보는 <개헌, 우선 순위 아니다>(2004.4.29)는 사설을 통해 "무엇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어긋나 정치 불안을 심화시키고, 대통령의 권력누수 현상이 너무 일찍 나타나 국정 불안정이 장기화하는 단점이 드러났다. 거의 매년 대선, 총선, 지방선거가 잇따라 치러지면서 생기는 국력소모도 엄청나다. 이런 만큼 정치권의 4년 중임제 개헌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며 또한 이렇게 주장했다.

"2008년은 현 대통령과 17대 국회 임기가 함께 끝나는 해다. 우리는 이에 앞서 2006년 후반기나 2007년 초 쯤에 개헌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다만 그때까지 당별로 조용하게 개헌작업에 대비하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찾고 국회 차원의 논의시기를 조율해 나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지금은 개헌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조선 "개헌 논의 불가피…20년 만의 호기 놓치지 말아야"

조선일보는 한 술 더 떴다. 조선일보는 2004년 4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열린우리당의 4년제 개헌에 관심을 보이자 "이제는 집권당과 제1 야당에서 공공연히 거론하고 나서는 시대가 됐다. 이는 개헌 논의가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더 이상 피할 이유가 없는 여건이 됐음을 보여준다"고 반색하면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강도높게 지적했다.

"4년 중임제 개헌론이 나오는 건 87년 이래 네 차례 단임제 정부를 거치면서 현행 5년 단임제의 폐해를 몸으로 겪은 탓이다. 단임제하에서는 새로 뽑힌 대통령과 그전에 선출된 국회가 또는 새로 구성된 국회와 그전에 선출된 대통령이 대립하는 게 일반화돼 왔다. 이런 이유로 해서 대통령마다 중간 평가격인 국회의원 총선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야당은 그들대로 대통령의 총선 개입을 규탄하는 투쟁 일변도로 나가 늘 국정과 정국이 함께 흔들렸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각각 5년과 4년으로 엇갈려 대선 다음해에 다시 총선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어 국력의 낭비가 심했고, 대통령이 총선을 몇 년차에 맞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이 달라지기도 했다...."(사설, <개헌 논의 할 수 있다>, 2004.4.28)

"개헌 논의가 공론화될 조짐이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2005년 2월16일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현행 헌법구조에서 개헌 논의는 상시 대기상태다. 누가 먼저 입을 여느냐의 문제일 뿐, 어느 시점엔가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은 정치권 전체가 공유하고 있다"며, 그 불가피성을 다음과 같이 절절하게 노래하기도 했다.

"우선 단임제는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운영에 대해 국민 심판을 받지 않는 '무책임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치 주체와 국민 여론 간의 피드백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은 5년간 '자기 뜻대로' 나라를 이끈다. '제왕적 대통령'이니 '오기 정치'니 하는 말이 나온 것도 단임이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 바 크다.

또 5년 주기 대선과 4년 주기 총선, 지방선거가 서로 엇갈려 돌아가면서 '선거 없는 해가 없는' 상황이 지속돼 왔다. 정권은 선거 때마다 모든 국정자원을 거기에 쏟아붓고, 그래서 비롯된 국가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면서 "개헌 논의가 언젠가는 불가피하다면, 이제 그 논의 시점에 대해서만큼은 얘기할 때가 됐다고 본다. 5년 단임제를 바꿔 다른 선거주기와 맞추려면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들 중 어느 한쪽이 자기 임기를 양보해야 하는데, 참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은 두 선거 사이의 간격이 거의 없다. 만일 개헌을 하려 한다면 이번이 2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호기인 것은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 특별담화, "4년 연임제 개헌…2007년에 하자"

그리고 어제(9일),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연임제와 국회의원-대통령 선거 동시 실시를 도입하는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천명했다. 전국에 생중계된 노 대통령의 담화는 과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사설의 복사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핵심대목만 간추려 들어보자.

"87년 개헌과정에서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막고자 마련된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이제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비약적으로 제고되고 국민의 민주적 역량이 성숙한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단임제가 추구했던 장기집권의 우려는 사라졌고, 오히려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임제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훼손합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받지 못하고, 또한 국가적 전략과제나 미래과제들이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되기 어렵습니다. 특히 임기 후반기에는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개정한다면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국가적 전략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조정하면서, 현행 4년의 국회의원과 임기를 맞출 것을 제안합니다. 현행 5년의 대통령제 아래서는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수시로 치러지면서, 정치적 대결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여 국정의 안정성을 약화시킵니다.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일치 문제는 정치권, 학계, 시민사회, 국민들 사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공론화되어왔고 합의 수준도 높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공약해왔고, 지금 여야의 정치 지도자들도 필요성을 말한 바 있고,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도 대표연설과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하고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차기 정부에서의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차기 국회의원은 2012년 5월에 임기가 만료되고, 차기 대통령은 2013년 2월에 임기가 만료되므로 단임 대통령의 임기를 1년 가깝게 줄이지 않으면 개헌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임기를 줄인다는 것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어느 쪽도 수용하기 어려우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헌법상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특별히 줄이지 않고 개헌을 할 수 있는 기회는 20년 만에 한번 밖에 없습니다. 이번을 넘기면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동아·조선, "때 놓쳤다"는 핑계 내세워 개헌 논의 반대

노 대통령의 담화내용은, 위에서 봤다시피,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주장과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들 신문들은 그 다음날 사설에서 일제히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것. 조선일보는 "이제는 개헌의 시기가 지나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고, 동아일보는 "하지만 우리는 '왜, 지금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그 진정성에 퀘스천 마크를 붙였다. 

   
  ▲ 조선일보 1월10일자 사설  
 
조선일보가 <대통령 개헌발언 때를 놓쳤다>고 주장한 이유는 단 하나.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는데, 국회 의석의 42%를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개헌을 다음 정권에서 논의하자는 것으로 당론을 결정했고, 따라서 노 대통령의 개헌안이 국민투표까지 갈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야당 대선 후보 결정 시기가 5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도 했다.

요컨대, 아무리 문제의식이 올바르고 국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한나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다음 기회'로 미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지적을 부러 간과함으로써 그 스스로가 정략적임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셈이 됐다.

노 대통령의 개헌 발의에 반대하기 위해 자기가 앞서 꺼낸 말들을 잡아먹는 식언(食言)의 묘기까지 선보인 동아일보의 경우는 더욱 딱하다.

   
  ▲ 동아일보 1월10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이전 사설들에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길게 서술해 놓고도 1월10일자 사설에서는 "노 대통령은 '단임제가 책임정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국민을 오도할 소지가 크다"고 말을 바꿨다. "대통령제의 본산인 미국에서는 '현행 4년 중임제가 다음 선거 준비 때문에 소신 있는 국정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6년 단임제'로의 개정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뒤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현란한 말의 성찬 때문에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

동아일보 사설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시종하고 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저급한 말꼬리잡기식 비난에서다. "노 대통령은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이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말해 차기 정권에서 개헌을 논의하자는 사람들까지 '사리에 어긋나는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 그 한 가지 예다.
 
X싼 놈이 X뀐 놈 꾸짖는 어처구니 없는 짓 언제까지 봐야 하나
 
10일자 조선만평은 '불과 10개월 전'만 해도 "개헌..되지도 않을 일 가지고 평지풍파 안 만든다"고 말한 사람이 '하루 아침에' 안면을 몰수하고 개헌을 떠드는 것을 보고 거리의 가판대 할아버지가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네" 하고 조롱하는 그림을 통해 노 대통령의 변신을 통렬하게 비웃었다.
 
조선만평 담당자 눈에는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적시하고 2008년 이전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고도 그것을 노 대통령이 발의했고 또 한나라당에 피해가 갈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안면몰수하고  그를 집어삼킨 두 신문의 둔갑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X싼 놈이 X뀐 놈을 꾸짖는 어처구니 없는 짓은 제발이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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