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 가운데 조선일보처럼 많은 욕을 얻어 먹고 사는 신문이 또 있을까? 단언컨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안티조선'에 몸담은 사람이래서 그리 말하는 게 아니다. 언론의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조선일보' 하면 이미 한 수 깔고 들어간다. 인터넷을 한번 들여다 보라. 조선일보 기사는, 이걸 돈 주고 사 보는 독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네티즌들에게 개그 단골소재다. 기사로서의 신뢰감을 완전 상실한 채 코미디감으로 놀림빵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조선일보가 어쨌길래? 복잡하게 말 할 것 없이 최근 지면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북에 선제공격설' WP 칼럼과 '김용갑 사과' 발언 - 30일자 지면

지난 27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침공이 없는 경우에도 대북 선제공격을 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는 놀라운 내용을 보도했다. 개념계획 수준에 머물렀던 '작전계획 5029'를 보완 발전시켜 북한을 먼저 공격할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이 합의했다는 것. 국방부가 즉각 나서 "협의한 바 없다"며 진화를 시도했지만, 그렇잖아도 북한 핵실험으로 긴장이 고조된 판에 그런 주장이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어느 쪽의 말이 진실인지는 좀 더 파헤쳐 보아야 알겠지만.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조선일보는 지면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한반도 위기를 다룬 외신 보도들을 빠짐없이 소개하기로 유명한 조선일보가, 대부분의 중앙 일간지들이 이를 주요한 기사로 비중하게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부러 모른 채 한 까닭은 무엇일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거론한 이 기사가 북한의 핵무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작용할까봐?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세력이 미국이라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처럼 중요한 논란거리를 제외시킨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날(30일) 조선일보는 6면 중앙 하단에 김용갑 의원의 사과문 소식을 짧게 보도했다. 김 의원의 '광주는 해방구' 발언은 2007 대선을 위해 한나라당이 뜸들이고 있는 동세서점의 꿈을 일거에 붕괴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것이었고, 까닭에 한나라당 입장에서 그의 사과문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조선일보가 이것의 뉴스가치에 주목한 것도 혹 그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선일보는 이날자 만물상 <지식인의 침묵>에서 "정치적 타산과 편가르기를 뛰어넘어 진실을 외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지식인이다"고 역설했다.

(2)광주학생운동 - 28일자 지면

   
  ▲ 조선일보 10월28일자  
 
지난 28일 조선일보 18면 상단에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관한 기사가 크게 실렸다. '학생의 날'이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새롭게 승격돼 올해 첫 행사를 맞게 됐다는 것. 조선일보는 광주 학생운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기사에서, 당시 조선일보가 "일본인 중학생이 조선 여학생을 놀린 것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짚고, 사설을 통해 "일본인 부형과 교육자 및 그 학생 제군들은 잘못된 우월감과 편견을 버리라"고 질타하기도 했다고 적시했다.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무자비하게 도려내는 조선일보의 거미('거두절미'의 준말)독법에 의하면, 조선일보가 마치 민족의 입장에서 광주학생운동을 보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나 다름 없는 후안무치한 짓이다. 조선일보가 입 다문 1930년 1월12일 사설의 뒷말을 마저 들어 보자.

"광주학생사건에서 발단이 된 학생시위사건이 전 조선에 확대된 오늘날에 있어 제군이 비상(非常)을 버리고 평상(平常)에 돌아와 고요한 책상 앞에 용기있게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 허다한 불만과 실망 속에 이토록 확대된 것은 학생들의 불행이자 조선의 불행이었다."(사설, < 동요 중의 학생제군―책상 앞으로 돌아가라 >)

당시 광주학생들은 "한국인 본위의 교육제도를 확립하라", "식민지적 노예교육제도를 철폐하라" 등을 외치며 온몸으로 일제에 맞섰다. 이런 광주학생의거를 ‘비정상적'이고 '불행한 일'로 매도하는 한편, 즉각 중단하고 학원으로 돌아가 '고요하게' 공부나 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용기있는 일'이라고 훈계한 조선일보가 지금 와서 보호색을 늘어놓으며 학생운동을 옹호하고 응원한 냥 '썰'(舌)을 풀고 있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적'이고 '불행한 일' 아닐까.

(3)'라면 사재기'와 '콘돔 판매급증' - 26일자 지면

   
  ▲ 조선일보 10월26일자  
 
지난 26일 조선일보는 타사가 감히 엄두도 못 낼 대형특종을 터트렸다. 10면에 자리한 <불안은 성욕을 자극한다> 기사가 그 주인공. 조선일보는 상기한 기사에서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편의점 훼미리마트 전 지점의 하루 평균 콘돔판매량은 1930개로 2006년 9월 하루 평균 판매량인 1610개보다 19.9 %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를 근거로 "안보 불감증을 개탄하고 있지만 말 없는 공포가 그림자처럼 우리사회 전체로 퍼지고 있다"고 설레발을 떨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북핵특집으로 야심차게 마련한 '공포의 오르가즘'은 콘돔 판매급증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 불과 300개에 불과한데다, 그 해석을 둘러싼 전문가들의 시각마저 제각각이어서 기사화화기에는 함량미달이라는 네티즌들의 따가운 질타 속에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일보로선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 초긴장'을 외치며 쉴새 없이 '핵핵'(核核)거렸지만, 얻은 것 없이 '개콘을 능가하는 코미디'라는 비웃음만 받게 된 셈. 조선일보는 핵실험 다음날(10일) 다른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한 '사재기는 없었다'는 기사를 홀로 싣지 않았다.

(4)파독 간호사에 대한 조선일보 칼럼의 진실 여부 - 한겨레 25일자 지면

   
  ▲ 조선일보 2003년 9월3일자 강천석 논설주간 칼럼  
 
지난 25일 한겨레 지면에 의미심장한 기사가 실렸다. 2003년 9월 3일자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주간이 작성한 칼럼 <눈물젖은 역사를 가르치라>가 허구라는 것. 한겨레는 최근 고국을 방문한 60년대 '파독 간호사' 대부 이수길 박사의 입을 빌어, 독일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광부들과 간호사 앞에서 울어 버렸고, 차 안에서 뤼프케 서독 대통령이 자기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박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는 내용은 없는 말을 지어낸 '역사 왜곡'이라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또 같은 칼럼에 실린 "독일 땅에 도착한 한국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일이 알코올을 묻힌 거즈로 죽은이의 몸을 닦는 작업이었다"는 내용 또한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에서는 간호사들이 주검을 닦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누구 말이 거짓이고 누구 말이 참될까. 만약 한겨레의 주장처럼 강 주간이 거짓을 말했다면, 그는 <거짓을 가르치라>고 선동한 셈이 된다. 그런데도 강 주간은 왜 지금까지 한겨레신문에 반박하려는 몸짓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지 그게 궁금할 뿐.

폐일언 왈, 이른바 '조선일보스럽다'는 것이 무엇을 함의하는지 감이 잡히시는가? 상기한 예만 가지고도 여러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정파적 입장에 따라 춤추는 것, 혹은 사실 여부를 떠나 자기가 하고픈 말만 하는 것, 내지는 제 얼굴에 침뱉고, 뻥튀기 수법을 남발하는 것, 나아가 없는 사실도 창작하고 거짓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 기타 등등. 결국 '조선일보스럽다'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의 총화라고 말할 수 있을 터다. 이를 다시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 찌라시의 춤바람' 같은 것. 아니 그런가?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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