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인원정리 문제로 내내 갈등을 빚어왔던 경향신문 사태는 사측이 끝내 대규모 ‘학살’을 단행, 노사 정면 충돌이라는 파국적 상황이 불가피하게 됐다. 사측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림으로써 노조의 선택도 ‘외길 수순’이 돼버렸다.

경향의 정리해고 사태가 어떻게 가닥을 잡아갈진 예측불허이다. 안신배사장은 4일 해고조치와 함께 발표한 특별담화문에서 “이제 더이상 정리해고는 없다”며 “우리 모두 아픔을 딛고 불굴의 의지로 경향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차게 전진”해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안사장의 이같은 호소가 사원들에게는 지극히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전진’은커녕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 것이 경향사태의 ‘오늘’이다. 노조로서도 물러설 곳이 없다.

경향사태의 경과를 보면 결과적으로 노조의 ‘양보’와 회사측 입장의 ‘관철’로 정리된다. 회사 방침에 때로는 강경하게 반발하고 명시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노조는 어쨌거나 임금동결 선언-고용조정 협의-명퇴 추진 묵인등으로 그 입장을 완화해왔다. 지난 8월 회사측의 돌연한 대규모 전직 배치도 노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지만 일단 ‘칼’을 뽑은 회사측의 어려운 입장을 고려해 ‘2개월 후 원직 복귀’라는 타협안을 받아들일 정도로 탄력적인 입장을 취했다.

명퇴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회사측의 막가파식 ‘배짱’에 ‘상여금 유예’라는 고육책을 제시한 것도 노조였다. 정리해고만은 안된다는게 노조의 ‘마지막 선’이었다. 그런데도 회사측은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노조의 이같은 ‘호소’마저 묵살해버렸다.

사실 회사측은 명퇴등을 통해 당초 감원목표를 거의 달성한 셈이다. 지난달 31일 마감한 명퇴신청자만 80여명에 이르고 있고 그동안의 자진 퇴사자까지를 합하면 90여명에 이른다. 회사측도 밝힌 것처럼 앞으로 자연 감원까지 고려한다면 내년 초까지는 1백여명의 감원이 가능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회사측은 당초 감원 목표 1백18명을 달성해야 한다며 작전하듯이 이번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사원들의 극심한 반발과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경영진은 왜 ‘마지막’ 10명을 쫓기듯이 ‘정리’하는데 그처럼 집착해야 했는가. 경향 사원들 모두를 짓누르는 답답함과 낭패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진의 이같은 경직된 태도에 대한 분석은 몇가지로 갈린다. 일각에선 매각을 전제로 한 사전정비설도 나돌고 있지만 매각설 자체가 ‘사실 무근’에 가깝다는게 중평이다. 유력한 것은 한화측의 다목적 포석용 주문설. 강력하게 적자해소책을 요구한 한화측의 주문에 자신들의 ‘진퇴’가 걸려있다고 본 경영진이 앞뒤 안가리고 ‘돌격 앞으로’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노사간 중재에 나선 편집국 차장단의 비공식 접촉에서도 경영진은 다른 선택의 ‘여지’는 아예 배제했다.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정리해고 대상자 10명의 연간 인건비를 사원들의 임금에서 마련하는 방안까지 제시됐지만 사측은 오로지 감원 목표 ‘달성’만을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인위적인 감원은 없다’고 노조에 장담했던 박종화경영본부장이 지난 7월 자신의 말을 뒤엎은 것도 ‘한화 주문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향 사원들이 “더이상 해고는 없다”는 경영진의 거듭된 다짐에도 전혀 신뢰를 보낼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려운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경비 절감도 중요하지만 책임지고 신문을 살릴 수 있는 비전과 소신이 필요한데도 경영진에 이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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