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부장, <남한의 그라운드 제로>라는 제목을 단 조선일보 10월25일자 당신의 기명칼럼을 잘 읽었습니다.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정치부장의 글답게 한 편의 글 안에 안보불안 선동, 햇볕정책 비난, 현 정부와 DJ에 대한 비판 등 넣어야 할 모든 재료를 적절히 배합시켜 녹여내는 솜씨가 역시나 보통이 아니더군요. 극한 상황을 가정하여 독자를 위협하는 'if절'의 활용도 그렇구요.
 
맞아요. 당신의 말처럼 "어느 날 한반도에 최악의 순간이 닥쳤을 때 북한의 낡은 수송기가 구식 핵폭탄 하나를 싣고 저공으로 휴전선을 넘어와 수도권 어느 곳에 착륙한다면?" 이 땅은 순식간에 그라운드 제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금융기관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의 예금과 거래 기록"이나 "우리가 지난 수십년 간 쌓아 올려온 경제적 성과 전체"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 "남한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도 그라운드 제로의 공포를 피할 수 없게" 되겠지요.
 
그래서, 그렇기로, 그렇기 때문에, 그걸 피하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80 노구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동서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한반도 해법을 역설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은 그조차도 "이 사태에 책임을 느껴야 할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은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지역 감정에 의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붓더군요. 하긴, 조선일보 사람에게서 다른 말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긴 하지만 말예요.
 
각설하고, 대한민국의 무사안녕을 간절히 염원하시는 당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몇가지 묻겠습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것이니 성실하게 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조선일보 10월 25일자 양상훈 칼럼  
 
먼저, 조선일보는 지난 7월12일자 사설 <"일본 망발"에 빌미 준 북 미사일엔 왜 태평이었나>에서, 일본의 군비증강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니 먼저 북한을 비난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노무현 정부를 몰아 부쳤습니다. 나아가 북한의 핵실험 다음날에는 "북한의 핵 보유는 일본의 본격적 재무장을 낳는다"고 단언하기까지 했습니다.(사설, <대한민국 지키는 대결단을>, 2006.10.10)
 
글대로만 이해하자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일본이 자위적 차원에서 본격적 재무장을 서두르고 있다는 식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말처럼, 북한의 도발이 일본의 군비증강에 빌미를 주고 있다면, 왜 그와 동일한 논리를 북한의 핵무장에는 적용시키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일본의 재무장을 북한 탓으로 돌려 옹호하는 그런 논리라면, 북한의 핵무장도 미국의 위협 탓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논리는 본디 무차별한 것입니다. 형평성을 결여한 논리는 논리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하여 묻건대, 조선일보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일본과, 같은 민족인 북한을 이렇듯 차별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일본이 재무장을 서두르는 것은 북한 위협에 기인한 순수한 자위적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고, 북한이 핵무장을 서두른 것은 외부 위협이 전혀 없는데도 본디 사악한 족속들이라서 그런 것입니까?
 
조선일보 정치부장이시니 잘 아실 겁니다. 북한이 얼마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목을 메고 있는지. 그리고 미국의 선제공격을 얼마나 두려워 하고 있는지. 또한 클린턴 정부 시절만 해도 곧 해결될 듯 하던 북미관계가 부시 정부 들어 어떻게 어긋나고 틀어졌는지. 조선일보가 그러한 정황을 다 무시한 채 오로지 북한의 핵위협만 부각시키며 일본의 재무장을 남보다 앞장서 정당화하고 자나깨나 미국만 감싸고 도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둘째, 조선일보는 지난 99년 6월15일에 작성한 <정부는 북한 똑바로 알아야> 사설에서, "김정일로서는 현 정부의 햇볕논리에 순순히 호응했다가는 50년 지탱해 온 폐쇄적 독재체제의 이완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니 그런 위험천만한 '햇볕'에 그가 왜, 무슨 이유로 호응해 주겠는가"고 했습니다. '햇볕'이야말로 북한 김정일 폐쇄정권에 가장 위험천만한 정책임을 조선일보 입으로 솔직하게 실토한 거지요.  
 
조선일보는 2006년 10월13일자 <북핵 Q&A>기사에서도 햇볕에 대한 이런 시각을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거기 실린 "개방이니 개혁이니 하는 것은 모두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자들의 수작"이라는 김 위원장의 말이나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생기고 경제 구조가 대외 개방형으로 바뀌어 나가면 오히려 정권을 지탱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현인택 고려대 교수의 말도 다 같은 맥락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햇볕'이 김정일 정권에 그토록 유해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아는 조선일보가 '햇볕'을 못 잡아 먹어 안달복달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조선일보는 상기한 기사에서 개방보다는 대결분위기가 김정일 정권의 체제 유지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그 증거로 " '개방'으로 인한 압력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에 미국과의 대화보다는 핵무장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왜?
 
사실이 아니길 빌지만,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방정맞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김정일 정권의 몰락이 아니라 존속이 아닐까 하는….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겠지요? 설마하니 입만 열면 대한민국의 생존을 염려하는 조선일보가 안보불안을 선동해 신문을 팔아 먹으려는 얄팍한 장삿 속에서 김정일 정권의 존속과 유지를 응원하고 소망하기야 하겠습니까? 아무렴, 그런 생각이야말로 '묻지마 이적행위'고 국가보안법에 당장 저촉되는 것을요. 아니 그렇습니까?
 
셋째, 물어볼 게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지면 제약과 읽는이의 짜증을 고려하여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아다시피 작금의 한반도 위기는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생래적으로 불신하고 혐오하는 부시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촉발된 것입니다. 부시의 네오콘은 집권하자마자 '다 된 밥에 재 뿌린다'는 격으로 북미 국교정상화 일보 직전까지 간 클린턴 정부의 대북 성과를 한 큐에 뒤엎었지요. 그러는 한편, 북한을 '악의 축' '무법정권'으로 몰고 '선제공격' 운운하며 위기를 부채질했습니다. 그 뒤의 사정은 잘 아실테니 부연하지 않겠습니다.
 
자! 이처럼 북한의 김정일과 미국의 네오콘이 서로를 불신하며 한반도를 볼모삼아 극한 대립을 펼치고 있는 마당에,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야 전쟁의 비극 없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미국 편에 붙어 북한을 압박하고 윽박하기만 하면 문제가 절로 해결되나요? 그렇게만 하면 온갖 제재 속에서도 핵무기까지 개발, 실험한 북한이 어느날 갑자기 회개하고 두 손 두 발 들고 나오느냐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현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비책은 미국과 북한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안전보장과 핵무기 포기를 약속하는 일괄타결안 밖엔 방법이 없을 듯 합니다. 상호불신이 극에 달한 상대에게 '너부터 먼저 포기해라. 그러면 살 길을 마련해 주겠다'는 것은 말장난일 뿐, 온당한 해결책은 아니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미 간의 직접대화를 강조하고 나선 것도 바로 그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양 부장의 눈엔 이조차 그리 못 마땅합니까?
 
좋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의 해법은 뭡니까? 공포를 극대화하여 불안을 선동하거나 정적을 헐뜯는 일은 '삼류 찌라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칭 '정론지'요, '대한민국 일등신문'이라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진대 '남한의 그라운드 제로'를 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해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북미 양자대화를 통한 일괄타결 방안을 주창한 DJ식 해법이 못마땅하다면, 뒤에서 비난만 하지 말고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 달라 이 말씀이에요.
 
조선일보가 "김 전 대통령은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다 할 대안도 제시 못 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제 생각과 다르다고 비난하고 "입 다물라" 윽박지른다면 그를 가리켜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언론이라 할 수는 없을 터. 대한민국이 조선일보가 독점하는 나라가 아닌 바에야 더욱 그래선 안되지 않겠어요? 조선일보의 독선적 횡포로 인해 이 땅이 '사상과 양심의 그라운드 제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언짢게 생각마시고, 부디 상기한 세 가지 물음에 성실히 답해 주시기를 원망 소망 갈망하옵나이다.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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