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0월18일자 12면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벤츠 뒷유리창을 벽돌로 가격한 '테러'가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는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의 말은 웃음으로만 가볍게 흘려 넘기기에는 뒷맛이 개운찮다. 우선 일국의 국회의원이 경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그것도 인류 보편의 공적이라 비난받는 테러사건을 두고 실없는 농담 따위를 했을 리 만무한데다 그 발언에 내포된 함의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발언 근거로 그동안 북한 측이 조선일보에 끊임없는 협박을 가해 왔다는 점을 들었다. 지난 97년 6월 조선일보에 무자비한 보복을 하겠다고 했고, 9월엔 북한 평양방송이 조선일보사와 기자를 테러하겠다고 협박했고, 또 2000년 7월에도 평양방송에서 조선일보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테러사건에 대공 용의점은 없는지, 이 사건을 하나의 대북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조사해야 한다"고 볼륨을 높였다.
 
김 의원의 의심처럼 이번 벽돌 테러가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렇잖아도 10.9 핵실험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남한 언론인에 대한 테러까지 자행한 폭력국가로 낙인찍히게 되면 국제적 고립을 면할 길이 아주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위태로운 명맥을 유지해 온 남북관계마저 완전히 얼어붙게 될 게 뻔하다.
 
그러나 "벽돌 테러는 예전부터 조선일보를 테러하겠다고 협박한 북한이 방우영을 대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김 의원의 말은 몇가지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
 
첫째. 김 의원의 추론이 성립하려면, 북한은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은 철저하게 지키는 '믿을 수 있는 국가'라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 야당에서 말하듯, 북한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권이라면 과거의 협박 발언을 근거로 현재의 테러를 추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보 아니고서야 사기꾼에게 말의 신실성을 기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점에서 김 의원은 북한 김정일 정권을 신뢰할 수 있는 집단으로 바라보는지 먼저 밝혀야 한다.
 
둘째. 김 의원의 추론이 맞다면, 북한은 조선일보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을 다짐해 놓고도 겨우 벽돌로 벤츠 뒷유리창을 흠집내는 정도의 테러 밖에 자행하지 못하는 '자비한' 국가가 되고 만다. 김정일 정권을 '생지옥'이라고 표현한 조선일보에 대해 백만배 천만배 적대감을 품고 있는 북한의 '무자비한 보복'이 기껏 벽돌 테러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아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잔혹함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것인가.
 
셋째. 김 의원의 추론처럼 방우영 테러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이 맞다면, 조선일보 내부에 북한의 고정간첩이 있는 것 아닌가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조선일보 내부의 협조 없이 북한이 어떻게 극비로 분류된 방우영 명예회장의 일정과 동향을 알 수 있겠는가. 정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벽돌테러를 자행한 범인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보이는 조선일보 내 적화동조세력"을 색출해내는 일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여론을 좌우하는 '일등신문' 안에 만의 하나 간첩이 숨어 있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대재앙 아닌가 말이다.
 
'벽돌테러'를 둘러싼 불필요한 잡음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김 의원은 '북한소행 가능성'이라는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보다 그럴듯하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일만 터지면 북한을 '기계장치의 신'처럼 끄집어 들이고, 나아가 더티한 언론플레이로 가뜩이나 안좋은 남북관계를 이간시키려는 치졸한 작태가 아니냐는 항간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국회의원의 말을 코미디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셈인가.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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