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는 거듭남이다. 거듭남에는 성찰이 앞서야 한다. 철저히 자신의 내부에 천착해 과오의 인과 법칙을 찾고자 하는 뼈를 깎는 성찰에 발 딛고 서서야 비로소 거듭남의 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 그는 한걸음을 내디딘 것인가.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무정부 상태의 광주”를 ‘창조’해낸 그 원죄를 떨쳐버리고 거듭남의 일보를 내디딘 것일까.

80년 광주의 취재기를 모아 엮은 ‘5.18 특파원 리포트’에서 김주필은 ‘악연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광주’를 향해 사과의 말을 전했다. 광주를 향해 곡필을 휘둘렀던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 뿐이다. 과거를 뒤돌아보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을 뿐 거듭남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80년 5월 25일,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무정부 상태의 광주”를 상술한 사회면 머릿기사에 대해 김주필은 “기사는, 신문은 그 시대 그 상황의 산물이며 기록일 수밖에 없다”고 자위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그 당시는 그 기사가 여러 사람의 입에 올랐었다는 것만은 적어두고 싶다.”

김주필의 고백을 관통하는 것은 상황논리다. 여기에 상대평가의 잣대가 덧붙여진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게 모아진다. “보도검열이 횡행하는 계엄하에서는 그래도 그 기사가 최선이었다.” 결국 김주필의 고백은 주장이 되었고, 사과는 상황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것이 되었다.

월간조선 85년 7월호의 ‘금남로의 10일’. 또 하나의 곡필사례로 꼽히는 이 기사에 대해 김주필은 당국과 시간과의 게임에서 완전히 당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나의 속셈은 어차피 희생자수는 누구도 2천명이라는 것을 거증할 수 없을 상황이니 사실을 사실과 맞바꾸는 척하면서 사실을 기록하자는 것이었다.” 김주필은 광주 희생자수를 2백-3백명으로 쓰는 대신 광주항쟁을 촉발시킨 17, 18일의 상황을 같이 쓰는 것을 “사실을 사실과 맞바꾸는 척하면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보고 정부 요로를 찾아다니며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암묵적 승인’을 얻어냈지만 기사가 다 작성돼 인쇄소로 넘겨진 상황에서 정부당국이 재검토를 요구해 기사가 변질됐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또 월간조선이 광주를 취재하는 것을 알고 뒤늦게 뛰어든 신동아 때문에 기사를 들어내지 못한 채 그대로 게재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덧붙였다.

김주필의 또 다른 고백에도 여전히 상황론이 깔려있지만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불가역적인 상황에 권력의 폭압 말고도 상업주의에 기반한 경쟁논리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특이점은 정부 요로를 자발적으로 찾아다니며 기사 내용을 ‘거래’한 데 대해 단 한마디 자평도 없다는 사실이다. 당초의 약속을 져버린 정부당국에 대한 원망이 있을 뿐 언론인의 대의에 입각한 어떠한 반성도 찾아볼 수 없다.

김주필은 글이 끝날 때까지 ‘사죄’란 말을 단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사죄, 또는 그 유사어가 있어야 할 자리엔 ‘자위’와 ‘후회’란 단어가 새겨졌고, 사죄의 심경이 배어나와야 할 문맥엔 상황론이 대신했다.

그리고 글 말미에서 이 한마디를 첨가했다. 자신의 손으로 광주의 실상을 보도하지 못한 것은 ‘업보’라고. 무엇이 업보를 낳았는지, 그 인과의 법칙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그저 업보라 했다. 그리곤 자신과 광주는 악연으로 맺어졌다고 덧붙였다. 광주항쟁 때는 사회부장으로, ‘금남로의 10일’ 때는 출판국장으로 광주와 악연을 맺었다고 술회했다.

광주와의 숙명적 연줄이 악연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인과의 법칙을 김주필은 너무 멀리서 찾았다. 자신을 악연의 굴레로 밀어넣은 그 인과의 법칙이 바로 자신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김주필은 돌아보지 않았다. 곡필로 내모는 상황이 불가역적이라면 차라리 펜대를 꺾어야 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대의가 자신의 가슴에서 어떤 가치로 자리하는지를 되새겨 보지 않았다.

그러기에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한 거두의 글은 옹색한 석명서가 돼 버렸고 김주필이 떨치고자 했던 원죄는 씻어지지 않은 채 더욱 끈끈한 올가미가 돼 버렸다. 그리고 다수의 독자는 자신의 과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어논리를 만들어내는 지식인의 왜곡된 처세를 다시 한번 목도하는 씁쓸함을 맛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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