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의 직업병 검진 과정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노동자가 최근 석면흡입으로 인해 폐조직이 섬유질화하는 직업병인 석면폐증인 것으로 밝혀져 노동부의 직업병 진단체계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민주금속연맹과 울산의 현대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이 회사 선실의장부 등에서 16년간 근무하다 지난 91년 퇴직한 정성복씨(62)는 지난 2월 노동부의 주선으로 이뤄진 직업병 검진결과 ‘정상’판명을 받자 이에 불복, 지난 7월 서울대 병원에 의뢰해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석면흡입에 따른 석면폐증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씨의 사례는 노동부의 직업병 진단체계가 허점 투성이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씨는 지난 92년과 올해 초 두차례에 걸쳐 노동부에 직업병 검진을 신청해 노동부지정 검진기관인 밀양의 영남병원에서 X선 촬영과 심폐기능에 대한 정밀진단을 받았으나 모두 정상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측의 경우 고해상도단층촬영기(HRCT) 등의 첨단장비를 이용해 정씨의 석면폐증상을 확인한 데 반해 직업병 전문기관인 영남병원의 경우 이같은 시설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노동부가 직업병 검진기관을 지정하는 데 있어 얼마나 졸속으로 선정하는지, 또 이로인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직업병 판정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씨는 또 10여년간 석면을 취급해온 노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두차례의 특수건강진단을 받지 못했음은 물론, 퇴직한 이후에도 6년 동안은 건강관리수첩을 발급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석면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 연간 두차례의 특수건강진단은 물론, 퇴직후에는 건강관리수첩을 발부받아 지속적으로 건강상태를 점검하도록 돼있으나 노동부는 석면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회사측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이같은 법률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민주금속연맹은 이번 정씨의 석면폐 판정과 관련해 “석면취급자 가운데 폐질환이 연달아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까지도 노동부는 석면취급자들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부는 시급히 과거 석면 취급자들에 대한 정밀검진을 실시하고 건강관리수첩을 발부해 정기적인 건강관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씨는 지난 76년 현대중공업에 도급공으로 입사한 이후 85년까지 10년간 선실의장부에서 주로 석면포를 절단하거나 바느질하는 일을 해오다가 퇴사 한해전인 지난 90년부터 갑자기 두통, 구역질, 가슴통증에 시달리자 직업병을 의심해 노동부에 검진을 의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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