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사매거진 2580’의 ‘공포의 통과의례’ 편(3월16일 방송)이 연세대 성악과 학생들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데는 두가지 법률적 판단이 작용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 3부(부장판사 박태범)의 판결에 따르면 ‘2580’ 팀은

△연세대 성악과 학생들로부터 취재승낙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긍정적 보도를 약속했으나 방송 결과는 이와 정반대로 이들이 퇴폐와 유흥에 물든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했으며

△식당에서의 환영회 장면만을 찍기로 약속하고 나이트클럽까지 따라와 학생들의 동의없이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고 모습 및 음성을 그대로 방송함으로써 이를 시청한 주위사람들이 이들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2580’ 팀은 학생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음성을 변조하진 않았지만 취재원의 신분과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화면이 불분명해 취재원의 가족이나 교수, 학우 등 가까운 지인만이 알아 볼수 있는 데다 폭력 등 불법행위에 대한 촬영이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은 지나치게 법 형식에 치우쳤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번 판결이 주목되는 것은 시사고발 프로그램과 일부 오락 프로그램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돼온 ‘몰래카메라’의 초상권 침해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법률적 판단이 내려졌다는 점 때문이었다.

몰래카메라는 취재원의 동의없이 도청 및 녹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버시 및 초상권을 침해할 우려가 높고 사실의 왜곡 및 조작 가능성마저 있어 그동안 적잖은 논란이 돼 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법적 소송으로까지 비화하진 않았다.

지난 4월19일 한국TV카메라기자회는 인권 침해 우려가 큰 몰래카메라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자고 결의했지만 아직까지 취재현장에선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 판결로써 앞으로 몰래카메라는 상당부분 자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건은 법률적 판결과는 별도로 몇 가지 논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취재원과의 약속 문제이다. 긍정적 보도를 약속했으나 결과적으로 부정적 보도를 내보낸 것은 취재원을 속이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2580’ 팀으로선 도덕적 흠결을 면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취재진도 예측할 수 없었던 나이트 클럽에서의 구타 상황이 돌발적으로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과연 취재원과의 약속이 유효한가하는 점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보도가 학원가에서 공공연히 이뤄지는 구타 행위를 고발해야겠다는 공익적 관점에 입각해 있고 몰래카메라 외에 다른 촬영 방법이 없었다면 취재원이 주장하는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초상권은 상당부분 제한돼야 한다는 게 언론학계의 시각이다.

다음은 프라이버시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아야 하는가의 문제다. 원래 프라이버시는 ‘고독할 권리’(right to be alone)라는 개념으로 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공개적 활동인 신입생 환영회가 과연 사생활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유일상 교수(건국대 신방과)는 “이런 경우 프라이버시라고 볼 수 없고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면 취재의 자유가 더 우선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생활의 범위를 이런 식으로 확대할 경우 취재를 위해 불가피한 거주 및 사무 공간 잠입 취재 및 공표 등으로 발생하는 사생활의 자유 침해 문제는 거의 피해 갈 수 없다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최근 보도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이 충돌하는 법적 소송의 경우 개인의 인격권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판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는 그동안 언론계가 별다른 의식없이 개인의 사생활 및 초상권을 함부로 침해해 왔다는 점에서 취재현장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은밀하게 자행되는 부조리로 만연해 있고 언론이 이를 눈감고 외면해선 안된다면 언제까지나 ‘신사적인 정공법’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언론계는 이번 판결이 자칫 사회적 부조리를 감시해야 할 방송의 역할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내면서 몰래카메라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KBS ‘추적60분’의 한 PD는 “몰래카메라가 점점 취재현장에서 없어지는 추세이고 없어져야 하지만 공익적 차원이 분명하고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TV카메라기자회도 몰래카메라 자제 선언을 하면서 “불법 현장 취재에는 불가피하다”는 단서를 분명히 하고 있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일선 취재진들은 빠듯한 제작시간에 ‘그럴 듯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지나친 ‘화면 욕심’ 때문에 몰래카메라를 자의적으로 남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취재 환경의 개선과 취재진들의 신중한 사용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언론계가 몰래카메라로 빚어질 수 있는 법적 소송 가능성에 대해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각 언론사는 보도준칙 및 자문변호사제를 통해 이에 대한 형식적 대비는 웬만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보도준칙은 너무 포괄적인 상황에 대한 지침만을 나열하고 있고 자문변호사제는 주로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활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변화하는 시대 추세와 다양한 경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의 가능성에 대한 학계 및 법조계의 연구 성과도 상당히 미진한 실정이다. 이런 조건에선 취재원도, 취재진도 원하지 않은 결과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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