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의 작은 통일”(경향), “남북 ‘협력의 새장’ 열다”(동아), “남북화해 역사적 첫삽”(세계), “남북 협력의 새장 열자”(조선), “남북 협력의 첫삽”(한국).

8월 20일, 북한 경수로 착공식을 알리는 신문의 1면 제목들이다.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공동사업을 알리는 신문의 화두는 화해와 협력이었다.

비록 대표들의 연설과 일문일답, 착공식 주변의 모습을 알리는 데 국한된 보도였지만 그 행간에는 경수로 착공식이 지구상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지대의 이념 장막을 거두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뜻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같은 날자, 같은 1면에 이들 신문은 남북 화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기사를 실었다. “월북 인지여부 내사중”(경향), “김대중 총재 내사”(조선), “김대중총재 전력 밝혀라-오씨 입북 당국서 방조설”(세계), “오익제씨 간첩혐의 포착”(한국).

이들 신문은 오익제 전천도교 교령 월북사건의 일파만파를 전하면서 오씨는 ‘황파일’에 올라있는 ‘간첩’이고 그의 ‘암약’이 정치권에까지 미쳤다는 스토리에 입각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월북 사전인지설까지 흘리고 나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 경우 보도해야 마땅하겠지만 무엇하나 확인된 게 없는 추측성 가설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었다.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그것도 남북화해와 협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을 대서특필하는 신문들. 분단의 경계선은 신문 1면에도 엄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일부 신문은 이날자 1면에 또 하나의 사실을 전하고 있다. “안기부는 황리스트를 갖고 있지 않고 따라서 오씨도 황리스트에 없다”는 권영해 안기부장의 발언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신문은 사설을 통해 황리스트와 오씨 사건의 엄정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황파일의 경우…대상인사들 중에는 증거 인멸이나 조기 월북을 꾀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들에 대한 동향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함으로써 제2, 제3의 오씨가 없도록 해야 하지만 동시에 억울한 피해자가 있어서도 안된다”(동아), “황파일의 경우 관계 당국의 언급 내용을 살펴보면 파일 자체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공안당국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수사에 착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조선).

같은 날자, 같은 지면에 실렸으면서도 제각각 따로 ‘춤추는’ 기사들. 그것을 ‘막무가내’ 보도라고 부르든 ‘분열증’ 보도라고 부르든 이들 신문이 의도적인 몰아가기에 나서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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