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들에게 기억에 남는 특종이 있듯이 편집기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제목들이 있다. 서울경제신문 길윤석편집부장(50)은 신문 제목 하나로 농수산부 표어를 바꾼 적이 있다.

농수산부에서 양식업을 한창 권장하던 시절이었는데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라는 농수산부 표어를 제목으로 한 기사를 길부장이 판갈이를 하면서 ‘바다목장 만든다’로 바꿨던 것. 이 제목을 다른 신문들이 받아서 사용하면서 유행어가 됐고, 급기야 농수산부는 표어를 길부장이 뽑은 ‘바다목장 만든다’로 바꿨다. 그때의 짜릿함이란.

길부장이 처음부터 편집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취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취재를 했으면 잘했을 겁니다. 취재기자가 성격하고도 더 잘 맞았고, 정치적 야심을 위해서도 취재기자를 하는 것이 더 나았죠. 대학시절에는 총학생회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편집기자가 그의 천직이었을까. 75년 대전일보 공채기자로 들어간 길부장은 동기들중 유일하게 편집을 하게됐다. 견습기간중 편집에 소질을 보인 것이 ‘화근’. 결국 길부장은 대전일보에서 3년간의 편집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취재를 하기 위해서 79년 신아일보 마지막 공채기수가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길부장의 편집경험이 발목을 잡았다. 견습기간 6개월만 편집을 하면 취재를 시켜주겠다는 편집국장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결국 80년 한국일보 이상우사장의 스카웃과 함께 취재기자의 꿈을 버리고 편집기자로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그의 편집기자 생활은 올해로 24년째가 됐고, 어느새 편집분야에서 손꼽히는 대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길부장은 지금이 편집기자에게는 중대한 변혁기라고 생각한다. 세로쓰기 편집의 오랜 관행을 깨고 가로쓰기 편집이 도입되고 있고, 편집기자의 위상에 많은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부장은 한국신문의 가로쓰기 편집이 아직까지는 미국신문을 표피적으로 베끼고 있는 수준임을 자인한다. “미국신문 편집이론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독특한 편집현실을 적용한 가로편집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편집기자들이 세로편집을 하던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가로편집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제목이 부딪히면 안되고, 통단은 안된다는 등 세로편집의 금기사항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가로 편집의 묘미가 ‘간결’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세로편집처럼 치장하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길부장은 무엇보다 후배 편집기자들이 편집기자로서의 자긍심을 갖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편집기자 경시풍조’가 금새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스스로를 기능공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후배를 만날때 가장 안타깝다.

80대년 초반, 한국일보에서 사회면 편집을 맡고 있던 시절의 일이다. 당초 제2사회면에서 다루려던 ‘정래혁 국회의장 축재사건’ 관련 기사를 ‘기사가 된다’고 판단해 사회면 머릿기사로 키운 것이 대특종이 된 적이 있다. 그만큼 편집기자가 기사 가치를 판단하고 편집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요즈음 길부장은 점심시간이면 한국일보사 바로 건너편에 있는 경복궁에 자주 들른다. 정년후를 고려해서 장편소설을 구상하기 위해서다. 길부장은 선사시대부터 우리나라 역사상에 등장한 여성들을 중심으로 장편의 소설을 쓸 생각이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책이나 인류학 책들을 2백여권 넘게 읽은 것도 이런 이유다. 이제 대충 소설 구상을 끝냈지만 요즘같이 바빠선 도저히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IMF이후 서울경제 편집부에서만도 7~8명의 기자들이 줄어들었다.

길부장은 92년도에 한국기자협회로부터 편집부문에서 한국기자상을 받았으며, 지난 94년에는 5공 당시의 편집비사를 엮은 ‘편집국 25시’(비봉출판사)를 출간하기도 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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