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팀의 이상호 기자 ⓒ이창길기자
12일 저녁 6시 MBC에서 '구찌스캔들'과 관련한 인사위원회가 열린다고 한다. 여기서 보도국장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앵커, 그리고 이상호 기자에 대한 징계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인사위원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 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은 이상호 기자는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 포상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상호 기자는 한국 언론에서 끊임없이 말썽이 되어온 기자들의 독직사건이나 윤리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장본인이다. 탐사기자로서 지난 10년간의 기자정신이 없었다면, 그냥 꿀꺽 삼키고 넘어갈 수 있었던 사건이 바로 '구찌스캔들'이다.

철저한 내부고발정신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그냥 '없었던 사건'이 될 수 있었고, 한국 기자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이 정도의 향응과 선물'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언론계에 경종을 울리며 적어도 '구찌 핸드백 수준'의 선물과 양주를 마셨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보여주는 '현실적 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런 내부고발자를 징계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앞으로 누가 '내부고발'의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를 MBC는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윤리 가이드라인 제시 등 한국 언론계의 썩은 관행을 세상에 알려서 털어 내려했던 것만큼이나 징계를 내려서는 안 될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이상호 기자가 내부고발문 말미를 유심히 살펴본다. 

"...나는 이제 2시간 후면 먼 나라 미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그곳엔 더 큰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일생일대의 시험과 나는 맞서게 될 것이다... 또한 밤잠을 포기해가며 지금껏 구찌 핸드백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있는 것도 모두 이번 출장의 성격 때문이다. 이번 출장은 자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수반하는 일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향후 기자의 숙명은 자본을 경계하는 일이다. 기자의 본분은 시장을 감시하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은 기자가 자본으로부터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자본과 시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라면 젖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본의 공세에 한번 젖게 되면, 해일에 몰디브가 잠기듯 한순간에 끝난다. 자본에 젖은 기자는 앞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기자상을 자임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호 기자가 2명의 선배와 자신에게 엄청난 불이익이 올 수도 있는, 그러면서 MBC와 시민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는 내부고발문을 쓴 이유는, 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국출장취재' 때문이다. '자본으로부터 기자의 순수성'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될 '출장취재'. 그것 때문에 이상호 기자는 자신과 자신의 선배들을 고발했다. 

"...오늘 떠나면 나는 내년 초에 돌아올 계획이다. 나의 출장 계획이 누군가에게 알려질 경우, 나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리고 각오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자본의 심장에 도덕성의 창을 꽂는 일. 이를 위해 기자는 어쩌면 목숨 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할 수도 있다. 불명예와 누명... 자본은 자기 보호를 위해 그 보다 더한 오명을 기자에게 씌우려할 것이다. 두려운 가운데 형용할 수 없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은 이번 출장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분기점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대의 좌판 위로 주사위는 던져졌고, 활은 시위를 떠났다. 그저 담대하게 운명의 길을 걸어가리라..."

이상호 기자의 글을 보면, 내부고발문보다 훨씬 더 파장이 깊고 넓은 그 어떤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떠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연말연시에 두 번이나 미국을 오가며, 취재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7일자 한겨레신문(인터넷판은 6일)에 의해서 '내부고발문'이 알려진 이후 한국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았을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 하지만 그가 끝내 취재하려 했던 그 무엇, 내부고발문이 현재 자신에게 가하는 '불명예'나 '오명'보다 더 중요했던 그 무엇, 자신의 글 때문에 한국의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도 귀국을 이틀씩이나 연기하며 취재하려 했던 그 무엇,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를 그 무엇,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을 걸어야 할 그 무엇. 그것이 궁금하다.

이상호 기자가 '자본의 심장에 도덕의 창을 꽂는 일'이라고 언급한 그 '자본'이란 무엇일까. <신강균의 사실은>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언론'과 관련된 일임을, 그가 지목한 자본이라면 '수구언론'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리고 방송가 주변에서 모락모락 피워 오르는 소문에 따르면, '수구언론의 결정적인 비리'를 포착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언유착의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상호 기자, <시사매거진 2580> 시절에 이미 연예PD 비리사건으로 수많은 연예인과 동료 PD들이 검찰을 들락거리게 했던 연제협 관련 보도로 가족까지 위험지경에 빠졌던 경험을 가진 이상호 기자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을 걸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그 과정에서 취재한 내용이 무엇일까. 

적어도 MBC는 '그 무엇'을 제대로 취재해서 보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봤자 2∼3주 안이다. 그리고 굳이 이상호 기자를 징계하고자 한다면,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MBC의 현명한 조처를 기대한다.

양문석 / 언개연 정책위원

 
   
 
필자인 양문석 박사는 저널리즘 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EBS 정책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뉴스비평> <신문의 왕국을 쏘다>(공저)
<미디어비평과 한국 TV저널리즘>(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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