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1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양회동 지대장 범시민 추모제가 열렸다. ⓒ노동과세계
▲지난해 6월1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양회동 지대장 범시민 추모제가 열렸다. ⓒ노동과세계

“인간적으로 조선일보 그 기자 생각을 묻고 싶다. 당신 생각에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나는 노조라는 이유로 방조가 되어야 하나?”

지난해 5월 고 양회동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건설노조 탄압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한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살방조 혐의를 받았던 홍성헌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부지부장이 무혐의로 확인됐다. 조선일보가 ‘기획 분신’ 의혹을 보도한 뒤, 보수 단체 신전대협이 그를 자살방조 혐의로 고발한 지 10개월여 만이다.

강원경찰청은 지난 4일 홍씨의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불송치했다. 이를 첫 보도한 경향신문에 따르면 경찰은 앞서 한 차례 사건을 무혐의 종결했고, 이후 같은 내용이 고발이 접수돼 각하(법률상 범죄가 성립되지 않음)했다. 정작 홍씨는 무혐의 처분 사실을 경찰로부터 듣지 못하고 있다가, 두 번째 불송치에 이르러서야 문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2023년 5월 17일 조선일보 신문 기사. 기사 하단의 분신 장면 CCTV 영상은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삭제 처리.
▲2023년 5월 17일 조선일보 신문 기사. 기사 하단의 분신 장면 CCTV 영상은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삭제 처리.

10개월 끈 수사 “무혐의 처분 더 빨리 나왔다면 이렇게 안 됐다”

홍씨는 지난 20일 통화에서 “무혐의 처분이 더 빨리 나왔다면, 이렇게 오래 숨듯이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사람들도 안다. 알면서 일부러 (시간을) 끈 거다. 경찰도 현장에 가 봤을 것 아닌가. 분신한 그 친구 휴대전화를 경찰이 가지고 있었다. 조사에서도 할 게 없다는 듯이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고인의 분신으로부터 약 보름 뒤인 5월16일부터 이틀간 온라인과 지면으로 홍씨가 분신을 막거나 불을 끄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를 쓴 최훈민 조선NS(조선일보 자회사) 기자는 ‘독자제공’이라고 표기한 춘천지법 강릉지원 CCTV 장면, 익명의 목격자 발언을 언급하며 “(홍씨가) 분신 준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떠한 제지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5월17일 조선일보 지면 기사를 보면, 본문에 YTN 기자들이 경찰에 “A씨(홍씨)가 현장에서 양씨를 말리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는 대목이 있음에도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 제목이 달렸다. 이 기사는 “민노총은 양씨 시신을 서울대병원에 안치해두고 무기한 장례를 진행 중이다. 양씨 부고장에 적힌 후원금 계좌의 명의자는 ‘전국건설노조’”라고 끝맺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현 인천계양을 국민의힘 후보)도 음모론에 가세했다. 원 전 장관은 보도 이튿날 페이스북에 “(분신) 현장에 있던 건설노조 간부가 이를 말리지 않고 한참 동안 바라만 봤다는 보도가 있었다”면서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경찰이 당시 자살방조 혐의가 없다고 밝힌 뒤인 지난해 6월 국회 대정부질의에서도 원 전 장관은 “매우 석연치 않다”며 기존 주장을 이어갔다.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의 페이스북 게시글 갈무리. 장관이 해당 게시글에서 공유한 분신 현장 CCTV 장면은 2차 피해를 고려해 삭제.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의 페이스북 게시글 갈무리. 장관이 해당 게시글에서 공유한 분신 현장 CCTV 장면은 2차 피해를 고려해 삭제.

“주먹으로 때려야지만 두드려 패는 게 아니지 않나”

홍씨는 조선일보와 원 장관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진짜 진짜 나쁜 표현을 많이 하고 싶은데”라고 말한 뒤 잠시 침묵했다. 그는 “주먹으로 때려야지 두드려 패는 게 아니지 않나. 사람들 고통 받는 것을 생각도 안 하고, 글로 찍찍 써 놓고, 지난 10개월을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분신 당일 상황에 대해 “지금 되짚어보니 기억하는 거지, 저는 YTN 기자 온 것밖에 기억이 안 났다. 분명하게 기억도 못 한다. (조선일보가) 유출한 그걸(현장 CCTV 장면) 보니까,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단다”라면서 “그럼 노조는 방조고 곁에 있는 사람은 왜 아닌가? 결론은 우리는 노조라서 방조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토로했다.

최 기자는 지난해 관련 기사가 나가기 전 홍씨에게 카카오톡으로 ‘왜 동료의 죽음을 막지 않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 6월께 홍씨가 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조선일보 자회사인 월간조선이 자사가 보도했던 양 지대장의 유서 위조·대필 의혹을 오보로 인정하고 사과한 뒤였다. 홍씨는 최 기자의 진심이 궁금했다면서 당시 이야기를 전했다.

“그 친구한테 물어봤다. 내가 기획했고 방조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자기는 대답을 못 하겠단다. 녹음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할 테니 기자님의 생각을 얘기하시라고. 인간적으로 아직도 (유서가) 대필이고, 아직도 교사고, 아직도 방조라고 생각하냐고. 그랬더니 그건 아니라면서 ‘그게(대필) 아니라고 결정이 났지 않느냐’고 얘기하더라. 나는 (양 지대장이 분신하는) 그 모습을 보고 주저앉았다. 평생 가지고 가야 한다. 당신은 글로 한 번 쓰고, 죽은 사람 유가족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한숨만 쉬고 말이 없더라.”

홍씨는 조선일보 기사에 달린 “그 잘난 노조 조끼를 벗어서 불 끄지 그랬냐”란 댓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내가 그 기자라면, 문자라도 한 통 했을 것 같다. ‘그땐 이래서 이랬고, 이렇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유서대필 오보 가지고도 사과를 했지 않나. 문자 한 통이라도 왔다면, 나 같으면 속초 와서 소주 한 잔 먹자고 할 텐데...사람들이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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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참여연대, 김용균재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179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낮 1시에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선일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건설노조·유족들이 고발한 ‘음모론 명예훼손’ 수사 답보 상태

홍씨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회동이가) 왜 나를 불렀는지, 왜 나에게 이런 걸 주고 갔는지... 거의 술로 살았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자기도 마지막에 무서웠던 거다. 그래서 나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건설노조와 고 양 지대장 유족들이 조선일보를 고발한 수사는 9개월째 답보 상태에 있다. 건설노조와 유족은 지난해 5월 자살방조 의혹을 최초 보도한 조선일보 기자와 사회부장, 원희룡 당시 장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분신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유출한 ‘성명불상자’(인적 사항을 몰라서 특정할 수 없는 경우)도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고발했다. 건설노조는 경찰이 피고소인 조사 진행 여부도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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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앞에서 장례행렬을 막아선 경찰들. 지난해 6월21일 오전 9시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노동시민사회장이 진행됐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노동과세계

“원희룡과 조선일보, 사과하라”

건설노조는 지난 15일 성명에서 조선일보와 원 장관을 향해 “인간이라면 양회동 열사와 유족, 동료에게 당장 사과하라”며 “이제 남은 것은 조선일보 분신방조 의혹 보도가 시작된 검찰청 CCTV 영상 유출된 경로가 밝혀지는 것이다. 신속히 수사 결과를 내놔 열사의 죽음을 비열하게 이용한 자들을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홍씨의 무혐의 처분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최 기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19일부터 21일 전화·메시지 연락을 취했으나 22일 현재까지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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