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일보 기자들의 기억법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획. 사진=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 경인일보 기자들의 기억법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획. 사진=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지역정당은 현재 정치체제를 깊게 고민하며 지역에서부터 정치의 변화를 이뤄가자는 시도이고, 차근히 그 경험을 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의 플레이를 보기만 하지말고, 매주 동네 조기 축구회에 나가서 우리도 직접 우리만의 플레이를 하며 세상을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이용희 직접행동영등포당 대표)

지역 곳곳엔 지역정치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지역정당을 만들어 지역 주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는 없다. 현행 정당법은 지역에 중앙당을 둔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중앙당을 만들면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인지역신문 경인일보 기자들은 지역정당이 필요한 이유를 파헤쳤다. 실제 지역정치를 실천하며 지역정당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다양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 15일 미디어오늘이 수원 경인일보 본사 인근에서 만난 경인일보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획의 공지영(디지털콘텐츠기획팀장)·김산·이영선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자처하며 표를 달라 구걸하던 이들이 선거가 끝난 후 ‘서울 여의도 후보선수’로 전락하는 현상이 끝날 수 있을까? 그래서 묻는다. 아니 따진다. 이준석 신당도 되고, 이낙연 신당도 되고, 하물며 허경영당도 되는데 왜 지역정당은 안 되느냐고.”

▲ 지난 15일 미디어오늘이 수원 경인일보 본사 인근 카페에서 만난 경인일보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획의 공지영(디지털콘텐츠기획팀장)·김산·이영선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15일 미디어오늘이 수원 경인일보 본사 인근 카페에서 만난 경인일보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획의 공지영(디지털콘텐츠기획팀장)·김산·이영선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전국에서 활동하지 않는 정당은 정당이 아니다

‘지역정당’이란 개념은 기자들에게도 생소했다. 처음 주제를 던진 김산 기자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5대4로 지역정당이 가능하단 의견이 다수였는데도 위헌 정족수인 6명을 채우지 못해 무산됐는데, 당시 지역언론에서 다룬 곳들이 별로 없었다”며 “지역 불균형에 대해 데일리 기사로 항상 보도해왔는데, 지역정당 금지가 불균형의 본질적 문제 요소 중 하나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행 정당법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독재정권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만들었다. 이중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고 명시한 ‘전국정당조항’은 1962년에 제정될 당시의 체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정당 설립 요건은 완화됐지만 정당법은 여전히 정당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 경인일보 '풀뿌리 정치'의 떡잎이 자랄 수 없는 이유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사 갈무리.
▲ 경인일보 '풀뿌리 정치'의 떡잎이 자랄 수 없는 이유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사 갈무리.

공지영 기자는 “군사독재정권이 본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 서울 중심의 정치체계를 만든 것”이라며 “정당은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주의의 꽃인데, 왜 서울만 가능해야하지?라는 궁금함이 커졌고, 취재하면서 한국이 서울공화국인 점을 다시금 느꼈다”고 말했다. 

기사에서도 상세히 언급된 2023년 9월 헌재 판결은 전국정당조항에 대한 지역정당네트워크의 위헌 소송에 ‘문제없음’(합헌) 결론을 냈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5명이 위헌, 4명이 합헌 의견을 냈지만 위헌 정족수인 6명에 미치지 못해 기각 당했다. 지역정당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형식상으로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 2022년 정당법 위헌 주장 집회 모습. 사진=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 2022년 정당법 위헌 주장 집회 모습. 사진 출처=경인일보 제공.

주목할 점은 전국정당조항에 대한 위헌과 합헌의 근거에서 모두 나오는 ‘지역주의’다. 합헌 측은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위헌 측은 “지역대립의 완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전국정당조항이 과연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효적 수단으로 기능해 왔는지, 모든 전국정당들이 특정 지역의 민심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해 왔는지는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두고 기자들은 “합헌 논리대로라면 전국정당들만 있던 우리 정치엔 애초에 ‘지역주의’가 성립할 수 없어야 한다”며 “하지만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현실을 돌아보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당사자는 오히려 현재의 ‘전국정당’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위헌 의견엔 거대 양당의 독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당 쳬계를 폐쇄적으로 만들어 유권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차단한다는 지적도 담겼다. 

지역언론도 무관심했던 ‘지역정당’ 의제

정당법에 대한 위헌 소송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제기된 위헌 소송에선 재판관 9명이 전원일치 합헌 결정을 내렸다. 17여년 전에 비해 의미있는 변화에도 지역언론은 ‘지역정당’ 의제와 헌재의 판결에 주목하지 않았다. 공 기자는 “우리를 포함한 지역언론이 지역정당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이 없었던 건 반성해야 한다”며 “지역소멸, 지역차별 등 여러 이야기를 해도 그 근원엔 정치가 있다”고 짚었다. 

▲ 지난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공지영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공지영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김 기자도 “지역정당을 계속 두드리는 분들은 지역정당을 지역의 이야기를 모아내기 위한 하나의 그릇이라고 말한다”며 “그런데 그릇조차 없으니 손을 각자 모아 그 자체가 공정하지 않고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역언론에도 똑같이 대입된다”며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당과 언론이 지역에선 취약한 환경에 놓이게 되고 심지어 정당은 만들어지지조차 못한다는 면에서 더 이입해 취재했다”고 했다.

기획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이들은 4·10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이 독식한 한국 정치의 현주소도 포착했다. 특히 선거구에 특정 상대 후보를 겨냥해 거물급 인사 또는 상징적 인물을 공천하는 ‘전략공천’ 문제를 짚었다. 전략공천 속에서 지역은 오직 이기기 위한 ‘선거구’일 뿐, 정작 유권자인 주민은 소외된다는 지적이다.

공 기자는 “지역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지역구를 전쟁터로 쓰는 것”이라며 “지역구를 쉽게 바꾸는 것도 그 지역을 위해 일한 적이 없으니까 효용성이 없는 거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서울 여의도에만 있으면서 거기서 주목을 받아보려 배회하는 후보 선수로만 있게 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전략공천을 선거 기사를 쓰기 위한 하나의 게임처럼 쓰는 언론도 문제”라며 “여기에 누구를 꽂아서 이기냐 아니냐만 따지는 재밌는 스포츠게임처럼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접민주주의 실천하려 지역정치 나선 사람들

기자들은 거대 양당정치의 폐해에서 벗어나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고자 지역정치에 나선 사람들을 찾았다. 특히 경기도 과천에서 지역정치를 실현시킨 비영리법인 주민공동체 ‘과천풀뿌리’에 대해 기자들은 “그분들이 싸운 세월이 지역정당이 왜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시작은 ‘우리 동네 정치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은 과천 주민들의 생각을 실현시켜줄 만한 후보를 골라 ‘밀어주기’를 실행했고 후보들은 시의회에 입성했다. 그 결과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2006년 지방선거에 과천시의회 의석 7명 중 주민들이 밀어준 후보가 2명, 2010년 지방선거엔 4명이 당선됐다. 

▲ 경인일보 '풀뿌리 정치'의 떡잎이 자랄 수 없는 이유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사 갈무리.
▲ 경인일보 '풀뿌리 정치'의 떡잎이 자랄 수 없는 이유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기사 갈무리.

하지만 ‘중앙당의 기조’를 핑계로 주민 다수 의견과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주민들의 성토가 커지는 중심엔 중년 여성들 중심으로 조직력이 큰 편이었던 단체 ‘파프리카’가 있었다. 기자들은 “이들이 힘을 모아 밀어준 시의원들은 모두 남성이었는데, 각종 행사에서 여성 주민들이 무보수로 봉사하는 것은 당연시 여기면서도 주민공용 공간 등 정작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 요구는 무리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흩어져있던 과천 주민 모임들이 모여 2013년 11월 ‘과천풀뿌리’가 탄생했다. 과천풀뿌리는 이듬해 6월 지방선거 대비에 착수했지만, 정당으로 등록돼지 못했다.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조항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무소속 후보가 됐지만 2014년 7월1 민선 6기 과천시의회는 새누리당 3석·새정치민주연합 2석·무소속 2석으로 시작했다. 기자들은 “무소속 2석은 간호사, 회계사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과천의 주민후보들(과천 풀뿌리) 몫이었다”고 했다.

주민 후보에서 ‘주민 의원’이 된 과천 지역민들은 자치 효용성을 느끼며 의정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역민이 직접 지역 현안을 끌고가는 효용성은 이들이 계속해 지역정당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 김산 기자는 “생태 환경 체험장을 허물고 박근혜 정부 승마 기관을 세우려는 걸 막은 경험이 있다”며 “본인들이 시의원으로서 홍보하면서 밤낮으로 시청, 열린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시민들이 직접 얘기하는 식의 토론회를 여는 등 일년 내내 노력해 무산시켰다. 의정 활동을 하면서 예산안에 잡혀있는 걸 보고 질의하고 내용을 포착해 실제 통과되기 전에 공론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선 기자도 “과천 중앙공원 광장에서 토론회를 많이 했었는데 ‘아고라’같은 느낌이었다”며 “지역 의제로 토론회를 열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목소리 내는 과정인데 결국 문제 해결까지 이어지며 직접 민주주의의 모습이 잘 드러났다”고 했다. 활발할 때 150명까지 모였던 과천풀뿌리 조직(현 과천시민정치당)은 헌재 결정 이후 구성원이 30여 명 정도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활동이 축소됐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다시 2026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준비 중이다. 

▲ 경인일보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영상 갈무리.
▲ 경인일보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영상 갈무리.

2021년 전국정당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조직된 지역정당네트워크엔 직접행동영등포당, 은평민들레당, 과천시민정치당,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등 4개의 지역정당을 표방하는 단체와 시민단체가 소속돼있다. 이들은 주민직접정치를 위해 지역에 정당을 설립하려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 시리즈 기사는 올해 시작한 경인일보의 ‘기자들의 기억법’이란 디지털 콘텐츠의 두 번째 기획 기사다. 공 기자(팀장)를 필두로 매달 다른 두 명의 저연차 기자들과 함께 탐사보도해 영상과 함께 온라인 기사로 내보내는 형식이다. 김산·이영선 기자는 이번 보도를 끝으로 다시 사회부, 정치부로 돌아갔다. 

‘기자들의 기억법’은 다음 편에서도 총선 기획 기사를 준비중이다. 관련해 공 기자는 “질 좋은 콘텐츠로 승부하고 저연차 기자들이 좀더 깊이있게 기사를 써볼 수 있는 통큰 기획을 경험해봤으면 생각으로 시작됐다”며 “다음 기획 기사에선 찾아도 잘 나오지 않는 경인 지역의 새로운 후보들에게 지역 의제를 던지고 독자들에게 그분들의 답변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려고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