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당연히 해 드리지. 사랑하는 내 직원 분이고 소중한 내 직원 분이니까, 다치면 내가 책임 지겠습니다.” ( 유튜브 ‘ㅊ’ 채널 유튜버)

구독자가 146만 명에 달하는 ‘ㅊ’ 유튜브 채널 기획자이자 매니저 임동석씨는 지난해 12월31일 유튜버의 이 말을 믿고 스키를 신은 채 산 위에 올랐다. “스키 경력자이니 보여달라”는 유튜버의 요구에 따랐다. 임씨는 두 차례 스키 시범을 보이는 과정에서 크게 다쳤고, 척추 두 곳이 골절돼 입원했다. 임씨가 이를 보고하자 해당 채널 관계자는 “프리랜서이니 산재 처리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유튜브 기획자와 헬스 트레이너, 콜센터 상담원 등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공동 진정에 나섰다. 이들은 “그간 ‘프리랜서 위장’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반복됐지만 사업주의 변덕과 각종 갑질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계약 형식을 노동자성 부정의 근거로 삼는다”며 노동부의 적극 행정을 요구했다.

▲유튜브 기획자와 헬스 트레이너, 콜센터 상담원 등 각계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공동진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사진=김예리 기자
▲유튜브 기획자와 헬스 트레이너, 콜센터 상담원 등 각계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공동진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사진=김예리 기자

임씨는 이날 계약서 없이 유튜브 채널의 ‘1인 다역’ 스태프로 일하다 다친 설움을 토로했다. 임씨는 ㅊ채널 콘텐츠의 아이템과 콘셉트를 구성하는 기획, 유튜브 촬영 도구와 장비를 준비하는 실무, 현장 운전과 유튜버가 마실 물·담배를 준비하는 등 매니저 업무를 도맡았다고 말했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급여는 월급으로 받았다.

임씨는 “진단 받은 당일 보고하니 ‘원래부터 허리가 안 좋은 것이 아니냐’는 어이없는 말을 들었고, 총괄 매니저는 부상으로 출근 못한 날짜는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했다”며 “보름 뒤 퇴원하니 상대는 말을 바꿔 병원비의 50%만 지급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임씨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도움 요청 글을 올리자 유튜버 측은 다시 협의를 요청해왔다. 임씨는 유튜버 측의 ‘산재 처리해주면 추가 금전은 요구하지 않는다’는 서약 요구에도 응했지만, 끝내 산재 처리를 거부당했다. 유튜버 측은 병원비에 위로금 30만 원을 더한 금액을 일방으로 송금했다.

임씨는 유튜버로부터 명예훼손 혐의 형사고소까지 당했다. 그는 “지난 26일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인터넷 게시판에 도움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고소까지 한 것”이라며 “지금도 허리 교정기를 차고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저는 단지 근로자로 인정받고 싶고, 이런 일을 겪는 미디어 종사자가 더는 없길 바란다”고 했다.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TV보다는 OTT와 유튜브를 시청하는 미디어 환경임에도 콘텐츠 제작자들의 노동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욱 열악하다”며 “수많은 유튜브 스태프들이 유튜버의 가혹하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으며 일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어떤 관리 감독을 하고 있나. 노동부가 적극 행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동석씨가 1월11일 골절 진단받은 뒤 유튜버와의 SNS 대화. 샛별노무사사무소 제공
▲임동석씨가 1월11일 골절 진단받은 뒤 유튜버와의 SNS 대화. 샛별노무사사무소 제공
▲구독자 146만 명인 ‘ㅊ’ 유튜브 채널의 기획자이자 매니저로 일하다 다쳐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는 임동석씨가 4일 부상 당한 허리 교정기를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구독자 146만 명인 ‘ㅊ’ 유튜브 채널의 기획자이자 매니저로 일하다 다쳐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는 임동석씨가 4일 부상 당한 허리 교정기를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무늬만 프리랜서’ 당사자들이 권리를 찾고자 문제를 제기하면, 사측이 그 책임을 회피하려고 또 다른 ‘무늬만 프리랜서’를 동원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공동진정에 나선 헬스 트레이너 김아무개씨는 피트니스센터로부터 사실과 다른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당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다른 트레이너가 퇴직금 진정을 제기하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발급해야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발급하지 못했다’라는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받았고, 제가 쓴 진술서는 사업주를 보호하고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증거로 사용됐다”고 했다.

김씨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PT 수업과 무관하게 정시 출퇴근과 당직 근무를 하고, 회의에 의무 참여했으며, 사업자 지시에 따라 △청소 △센터 전단지 배부 △신규회원 기본수업 등을 수행해왔다면서 노동자성 확인을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헬스트레이너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첫 확정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헬스트레이너 김아무개씨가 피트니스센터 사업주로부터 작성을 강요받았다고 밝힌 허위 진술서 내용을 재구성한 이미지. 사진=샛별노무사사무소 
▲헬스트레이너 김아무개씨가 피트니스센터 사업주로부터 작성을 강요받았다고 밝힌 허위 진술서 내용을 재구성한 이미지. 사진=샛별노무사사무소 

콜센터 ‘교육기간 임금착취’ 관행에 특별근로감독을 청원한 이들도 있다. 콜센터 업체들은 통상 직원 서류와 면접 시험을 마치고도 이틀에서 한달 간 하루 3만~5만원 지급하는 ‘교육 기간’을 둔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이 기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을 지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여기서 3.3% 사업자 소득까지 떼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콜센터 교육생 허은선씨는 “직원이 1만 명 가까이 되는 업계 1~2위 대형 콜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임의로 의무재직기간을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교육비를 떼먹는다”며 “더 심각한 것은 산업인력공단 ‘사업주 환급과정’에 등록해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교육비를 주지 않는 이중착취”라고 했다.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이 4일 전국 무늬만 프리랜서 1자 집단공동진정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이 4일 전국 무늬만 프리랜서 1자 집단공동진정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은 이날 연대 발언에서 “우리에게 PT(개인 운동 트레이닝)를 제공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콜센터 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이 사실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그 현실 앞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오늘 이 목소리는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의 목소리다. 노동부는 근로감독에 나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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