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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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노동자 10명 중 3명(27.5%)이 최근 3년 내 직장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노동조합이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프리랜서, 계약직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할 수 있는 신고센터 역할에 나설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윤창현)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평등 조직문화 실태조사 결과 연구보고서를 지난 19일 공개했다. 언론노조가 민주노총 법률원 부설 노동자권리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7월~9월 진행한 조사에, 전체 조합원 1만5701명(2023년 기준) 중 2974명이 참여했다. 노조 간부 29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지난해 9월~10월) 결과도 보고서에 담겼다. 언론노조가 전체 조합원 대상으로 성평등·조직문화 실태를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 직장내 괴롭힘 경험은 ‘비합리적 절차나 방식으로 작업할 것을 요구받음(73.1%)’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설명 없이 마감 임박한 새로운 업무 받음’(63.7%), ‘업무 실수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적 발언·고성이나 욕설 등’(61.1%)이 뒤를 이었다. 관련 사례로 ‘초과 노동을 시키고 폭언을 행한 경우’,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과하게 먹은 후, 술자리를 함께 한 세 명을 때린 경우’, ‘상습적으로 후배의 뒤통수를 치는 등 불쾌한 행위를 한 경우’ 등이 언급됐다.

지난 3년 간 성희롱·성폭력 경험은 ‘성적 비하, 외모 평가, 성적 대상화 등’(50.8%)과 ‘신체를 접촉해 성적 불쾌감을 주는 행위’(26.2%) 비율이 높았다. 구체적으로 ‘남성 부서장이 복수의 여성 부원에게 상의를 탈의한 본인의 사진을 찍어서 보낸 경우’, ‘팀장이 취재원과 회식 자리에서 팀원들에게 장시간 부적절한 추행을 행한 경우’, ‘출장 동반 시 강간을 한 경우’ 등의 사례가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성추행을 경험해 고충을 호소한 응답자는 10명 중 3명(27.7%)이 채 되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신고가 들어와도 구두경고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A씨는 “성 문제 같은 경우 좀 더 빠르게 분리가 되는데 언어폭력 등의 경우는 내부적으로 직접 계약 관계상에 이행해야 하는 의무들이 없어서 구두경고 혹은 본인이 그만두고 나가는 경우 외에는 조치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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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프리랜서도 포괄할 수 있는 신고센터로 노조 거듭나야”

직장내 괴롭힘·성폭력 대응 지침 등 규정이 마련돼 있는 언론사는 많았지만 피해자들은 여러 이유로 신고에 나서지 못했다. 특히 신고처가 인사팀 한 곳으로만 지정됐을 때 회사 내 정규직으로 소속되지 않은 계약직 직원이나 프리랜서의 경우 고용상태가 불안정해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B씨는 “(프리랜서) 작가들이 인사팀 가기를 주저하는 게, 나는 피해자인데 직원이 아니고 가해자는 직원이면 인사팀이 가해자한테 유리한 결정을 하지 않을까? 라는 불신이 크다”고 전했다.

관련해 연구보고서는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프리랜서, 계약직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할 수 있는 신고센터로 노조가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면접조사에 참여한 한 조직의 경우, 프리랜서들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성추행이나 성희롱, 성폭력 사건들이 제대로 사건화되지 않고 끝나버리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껴 부서 차원에서 매해 전수조사 형식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건에 조합원이 개입됐음에도 노조가 인사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석은 하더라도 의견 개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조사 이후 가해자의 양형을 결정하는 과정에 노조가 적절하게 의사결정을 내기 어려운 상황과 더불어 노조가 참여하는 조사위원회 결과가 인사위원회에 강력하게 반영되지 못하는 한계도 나타났다.

연구보고서는 노조가 성희롱·괴롭힘 문제에 대응할 능력을 만들려면 노조의 일상 활동으로 역량과 경험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희롱·괴롭힘 사건이 발생할 때만 일회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사업으로 지속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상담–사건발생 시 조사–사후조치–재발방지–교육–정기점검’으로 이어지는 사업 구축, 해당 사업장의 상황과 조건에 맞춰 사업 내용과 범위를 확장해가는 노조 활동 전략에 대한 검토가 동반돼야 한다는 제안이다.

▲  '성평등·조직문화 진단과 노동조합의 역할 및 과제' 연구보고서 갈무리.
▲  '성평등·조직문화 진단과 노동조합의 역할 및 과제' 연구보고서 갈무리.

10명 중 8명, 육아휴직 사용하기 어렵다

이 밖에 업무 수행에서의 차별 관련 설문조사에선 “업무상 중요한 결정을 하는 회의 구성원은 같은 직급 내 남성 비율이 더 높다”는 데 응답자 과반(52.4%)이 동의했다. 응답자 특성별로 여성(63.4%), 기자(63.2%), 지역신문(64.6%), 지역방송(61.2%)에 해당되는 응답자들의 동의 비율이 높았다. 

“정규직 결원이 발생할 경우 그 자리에는 주로 남성이 채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항목에는 19.3%가 동의했다. 이 경우에도 여성(26.8%), 지역신문(29.1%), 지역방송(27.6%)에서 상대적으로 동의 비율이 높았다. “정규직 여성 비율보다 비정규직 여성 비율이 더 높다”는 데에는 응답자 10명 중 약 3명(33.3%)이 동의했다. 이 항목에 대한 동의 비율은 특히 지역방송(65%) 종사자가 두드러졌고 여성(40.3%), PD(45.7%), 서울 방송(41.4%) 역시 동의 비율이 높았다. 

육아휴직 사용 관련해선 응답자 10명 중 8명가량(79.2%)이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주간지·전문지·인터넷(90.6%)의 경우 타 집단에 비해 사용하기 어렵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육아휴직 사용이 저조한 주된 이유는 ‘대체 인력 없어서’(68%), ‘회사 분위기상 사용하기 어려워서’(66.7%) 등으로 나타났다. 기자 직군은 ‘회사 분위기상 사용하기 어려워서’(76.7%), 지역신문은 ‘대체인력이 없어서’(80.6%) 육아휴직을 쓰기 어렵다고 했다.

언론노조는 이번 조사에서 나온 대책 및 과제를 ‘2024년 임단협 투쟁 지침’에 포함하고 각종 교육 조직 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다. 김수진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실태조사는 성희롱·괴롭힘 대응사업을 체계화하는 데서 나아가 ‘성평등하고 민주적인 노동환경’ 마련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이번 조사 의미를 강조하면서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장별 성평등 단협안 마련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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