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기피인물 재채용을 막기 위해 만든 소위 ‘블랙리스트’에 기자·PD 등 언론인도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쿠팡 측은 관련 의혹 제기를 “악의적 보도” “허위사실”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MBC는 지난 13~14일 쿠팡에 블랙리스트격인 ‘PNG 리스트’가 존재하며 해당 리스트에 채용 기피 대상인 직원들, 나아가 신문·방송사에서 일하는 언론인 약 100명 등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MBC는 ‘PNG’ 의미를 ‘기피인물’을 뜻하는 외교전문 용어인 ‘페르소나 논 그라타’(PNG, Persona Non Grata)로 추정했다. MBC는 또 쿠팡 퇴직자, 노동조합, 언론 종사자 등 관계자들이 본인 이름과 소속, 생년월일, 휴대전화 번호 등을 입력해 해당 리스트 포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나도 쿠팡 블랙리스트?> 페이지를 공개했다.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보도에 따르면 이 리스트에는 쿠팡 관련해 코로나19 방역 허점을 보도하거나, 폭염 속에서 에어컨 없이 일하는 물류센터 노동 실태를 보도한 기자 등이 포함됐다. 쿠팡 관련 보도를 한 적이 없는 기자들의 경우, ‘시경 캡’ ‘바이스’ 등으로 불리는 경찰청·서울시경찰청 출입기자 명단과 상당수 일치한다고 MBC는 보도했다. 언론인들 등재 이유로는 ‘내부정보 외부유출’ ‘회사 명예훼손’ ‘기밀정보 유출’ ‘허위사실 유포’ 등이 제시됐다.

이와 관련해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쿠팡 대책위)는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PNG 리스트’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을 공개한 바 있다.

언론계에선 쿠팡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5일 “블랙리스트가 노동권과 언론자유를 침해한 중대 범죄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쿠팡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즉시 요구할 것이며 언론인 개인정보침해와 취재 방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 아울러 글로벌 기업이라 자평하는 쿠팡에 걸맞게 이번 범죄행위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글로벌 연대로 쿠팡의 허울을 벗겨내겠다”고 했다.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언론노조는 “다수 언론의 보도와 쿠팡대책위의 의견을 들어보면 블랙리스트는 노조 조합원과 내부 공익제보자의 취업을 막고, 쿠팡 관련 탐사보도를 했거나 업무 환경의 문제를 지적했던 언론인의 취재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며 “특정 노동자의 개인정보를 명시하여 취업을 차단하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자 노조 조합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쿠팡은 허울만 글로벌일 뿐, 한국계 미국인인 김범석 의장이 영주처럼 전횡을 휘두르는 봉건 왕국임이 드러났다”고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이날 “(쿠팡이) MBC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예고한 건 더 큰 문제다. 쿠팡의 천박한 언론관을 규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서 “2021년 2월 자사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고발한 기자 및 언론사를 상대로 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빚었던 곳이 바로 쿠팡”이라고 했다.

언론연대는 “쿠팡의 노동환경은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다’고 알려진 만큼 열악하기로 유명했다. 그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했다”며 “쿠팡이 정작 해야 할 일은 언론을 겁박하는 게 아니라,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쿠팡은 ‘로켓배송(새벽배송)’ 등을 내세우며 국내 택배시장을 빠르게 장악해가고 있다. 쿠팡플레이를 통한 OTT업계에 진출한 상태다. 기업 규모가 커지는 만큼 감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쿠팡풀필트먼트서비스(CFS) 홈페이지 보도자료 갈무리
▲쿠팡풀필트먼트서비스(CFS) 홈페이지 보도자료 갈무리

쿠팡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는 14일 “사업장 내에서 성희롱, 절도, 폭행, 반복적인 사규 위반 등의 행위를 일삼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함께 일하는 수십만 직원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회사의 당연한 책무”라며 “MBC는 출처불명의 문서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인터뷰, 민노총 관계자의 악의적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하여 CFS와 CFS 임직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CFS는 이러한 MBC의 비상식적이고 악의적인 보도 행태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소를 포함한 강력한 법적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15일엔 전날 ‘PNG 리스트’ 관련 기자회견을 한 쿠팡 대책위 소속 권영국 변호사(전 민주노총 법률원장)를 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로 형사고소한다고 밝혔다. CFS는 “CFS 인사평가 자료에는 ‘대구센터’ 등의 표현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권 변호사 등은 암호명 ‘대구센터’ 등을 운운하며 CFS가 비밀기호를 활용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허위 주장했다”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조작 자료를 유포하고 상식적인 여론조차 폄훼한 권영국 전 민노총 법률원장에 대해 형사고소하여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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