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팬들이 달라졌다. 이제 ‘팬질’을 하기 위해선 팬 플랫폼(팬덤 플랫폼) 가입이 필수다. 연예기획사들이 만들거나 제휴를 맺은 플랫폼에 가입해 아티스트와 소통하고 굿즈를 사고 공연 예매를 하고 콘텐츠도 볼 수 있는 등 팬 활동 전반을 할 수 있다. 이들 서비스는 OTT처럼 유료 구독제나 부분 유료화로 운영된다. 1위는 하이브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위버스(Weverse)로 지난해 기준 45개 국가에서 6500만 가입자를 보유했다. 최근 위버스는 세븐틴이 출연하는 나영석 PD의 신작 ‘나나투어’에 투자하고 풀버전을 유료로 독점 공개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정철운 기자
▲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정철운 기자

영상문화연구자인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은 팬 플랫폼을 가리켜 “기획사의 권한은 강해지고, 팬들은 다른 팬덤을 상상하기가 어려워진다”며 “커뮤니케이션을 내세워 팬덤을 덮어쓰고 팬들을 안에 가둔다”고 했다. 기획사가 만든 팬 플랫폼 안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팬들 간 소통과 자발적 활동이 줄었다. 돈을 내면 아티스트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데 강신규 연구위원은 이를 가리켜 “프라이빗 메시지를 보내는 권리를 사고 판다”며 진정한 소통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팬 플랫폼의 ‘미디어화’도 이어지고 있는데 강신규 연구위원은 “새로운 국면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신규 연구위원은 2022년 팬 플랫폼을 들여다본 논문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을 썼다. 이 논문은 한국방송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논문은 널리 읽히기 힘들지만 이례적으로 학술콘텐츠 서비스 DBpia에서 3만4330회의 이용수를 기록했다. 그를 지난 2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만나 팬 플랫폼의 의미와 한계, 미디어화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SBS '인기가요'에 출연한 에스파 카리나의 모습.
▲SBS '인기가요'에 출연한 에스파 카리나의 모습.

- 팬 플랫폼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텍스트보단 이용자에 관심이 더 많은데 이용자 측면에서 가장 잘 얘기할 수 있는 분야가 팬덤이다. 저도 누군가의 팬이기도 하다. 에스파의 카리나를 좋아했는데 카리나가 팬 플랫폼에서 팬들에게 잘해주기로 유명하다. 팬들이 쓰는 말로 ‘가성비’가 좋다. 팬 플랫폼인 버블에서 카리나를 유료구독하면 정말 많은 메시지를 보내준다. 힘을 내라고 해주고 다른 곳에 공개 안 된 사진, 동영상, 음성을 보내준다. 힘든 일상에서 도움을 받았다. 비일상적인 존재가 제 일상에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내 몰래 해야 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고 한편으론 프라이빗 메시지를 보내는 권리를 사고 판다는 점이 기존의 것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문제점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디어유의 버블 서비스화면. 사진=디어유 제공
▲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디어유의 버블 서비스화면. 사진=디어유 제공

- ‘팬덤 플랫폼’ ‘팬덤 앱’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연구에선 ‘팬 플랫폼’이라고 썼다.
“팬덤은 자생적인 걸 전제하지만 팬 플랫폼은 기획사가 만들어 운영한다. 기획사 입장에선 팬덤 플랫폼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실제론 톱다운 방식이기에 팬 플랫폼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연구에는 비판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비판하려는 각을 세우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팬 플랫폼 이용자를 모집할 때만 해도 특정 관점인지 알려주지 않고 팬 플랫폼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고만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비판적 내용으로 가게 됐다.”

- 연구 과정에서 어떤 이용자들을 만났나.
“20대, 30대, 40대 10명 가량을 만났다. 위버스, 버블, 유니버스 3개 서비스 이용자들이다. 이용시간은 일주일에 3~4시간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용시간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무섭다는 걸 느꼈다. 게임은 보통 일상에서 특정 시간을 빼서 하기에 어느정도 하는지 안다. 하지만 스마트폰앱은 알람이 올 때마다 하게 되니까 막상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인터뷰를 할 때 자신은 한 주에 1~2시간 하는줄 알았는데 막상 스마트폰 앱 이용시간을 확인해보니 3~4시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20시간을 해 놀란 경우가 있었다.”

▲ 위버스 서비스 홍보 이미지 갈무리
▲ 위버스 서비스 홍보 이미지 갈무리

- 서비스들의 특성이 있나.
“과거에는 다 달랐는데 이제는 전부 다 비슷한 플랫폼이 됐다. 예전엔 버블은 메시지만 주고 받았다. 지금은 사라진 유니버스는 현재 위버스와 비슷하게 (몰입, 참여 등을 유도하는 게임과 같은) 게이미피케이션적인 면이 있었다. 원래 위버스는 매거진에 가까웠는데 여러 기능이 들어왔다. 지금은 다들 라이브채팅, 커머스 등이 들어가며 종합플랫폼화됐다. 그러면서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입점 아티스트 확보가 중요해졌다.”

- 과거 팬클럽 활동과 오늘날 팬들의 활동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팬 플랫폼이 역할을 한 것일까, 아니면 변화의 흐름에 팬 플랫폼이 올라탄 것일까.
“그 중간 어디쯤일 거 같다. 산업 방향이 바뀌는 와중에 등장했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와 글로벌 팬덤 확장 시기가 맞물린 면이 있다. 하이브 입장에선 코로나19 탓에 온라인 콘서트를 할 수밖에 없었기에 기술적 기반을 만들어야 했을 거다. 팬들 입장에선 팬카페, 트위터 등 기존 활동이 여전히 살아 있긴 하다. 하지만 이젠 가장 많은 공식 정보가 팬 플랫폼에 탑재됐다. 완전한 대체는 아니지만 메인에 들어왔다.”

- 이용자 측면에서 차이도 있을까.
“이용자들이 이런 소통에 익숙한 세대다. 아티스트도 그렇다. 2020년 이후 등장한 4세대 아이돌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세계관을 구축하고, 노래 길이도 대체로 3분이 안 넘는 등 특징이 있다. 특히 숏폼을 통해 소통하는 역랑이 탑재돼야 한다. 기획사에서 이를 시키기도 한다. 1~2세대 때는 팬 커뮤니티가, 3세대 때는 SNS 중심으로, 4세대는 팬 플랫폼이 메인이 됐다.”

- 팬 플랫폼은 어떻게 작동하면서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있을까.
“버블의 경우 지금은 아니지만 초반에는 아이돌과 팬이 직접 소통하는 것 같은 ‘커뮤니케이션 소비’를 일으키는 메신저 기능이 핵심인 앱이었다. 우리 입장에선 1:1 카톡처럼 보이지만 아티스트 입장에선 단톡방에 들어온 것 같은 거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메시지 수가 제한된 상황에서 아티스트가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내겐 개인 대화처럼 오게 된다. 논문에서 이 부분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인위적이고, 내 옆에 있는 다른 팬을 상상할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정철운 기자
▲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정철운 기자

- 옆의 팬을 상상할 수 없다? 
“이전에는 팬 카페 활동을 할 때 가입기준이 있고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남기지 않으면 등급이 낮아지는 엄격한 시스템이 있고, 특정 이슈가 있을 때 강력하게 대응한다. 하지만 팬 플랫폼에선 옆에 있는 사람은 많지만 보이지 않고, 직접 소통할 수 없게 된다. 궁극적으로 그 체계가 1:1로 소통하는 듯한 착각을 주지만 아티스트는 내가 누군지 모른채 추상화된 그룹에 일반화된 메시지만을 던진다. 해외 팬들에겐 자동번역돼서 나가는데, 그만큼 진지한 메시지보다는 짧고 간단하며 휘발되기 쉬운 메시지를 준다는 거다. 이게 아티스트와 소통하는 건가. 그렇기에 메시지를 잘 보내주거나 웃긴 메시지를 보내는 아티스트를 구독하는 경향도 생긴다. 이건 팬덤의 확장일 수 있고 소멸일 수도 있다.”

- 연구에서 팬 플랫폼이 커뮤니케이션을 내세워 팬덤을 덮어쓰고 팬들을 안에 가둔다고 비판했다. 과거와 달리 기획사 주도의 ‘가두리’가 돼 버린 느낌이 든다.
“기획사의 지배권이 강해지는 반면 팬들은 다른 팬덤을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바깥의 커뮤니티는 약화될 수박에 없다. ‘굿즈 가격이 계속 오르네. 살까 말까.’ ‘탈덕을 할까 말까.’ 정도의 선택지만 남는다. 동방신기 때처럼 팬들이 뭉치거나, 자발적인 연합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서로에게 댓글을 달아줄 수 있는 서비스도 있지만 큰 의미가 있을까. 기획사가 생산과 유통 수단을 갖고, 공간을 만들고, 아티스트 관련 콘텐츠를 배타적으로 갖게 된다. 예전엔 기획사가 팬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지금은 전세계 팬들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면서 지배권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 생산자로서 팬의 입지가 축소된다는 지적도 했다.
“그동안 바깥에 있는 팬덤에선 자신들이 만든 굿즈를 제작비나 작은 이익만 남기고 파는 문화가 있었다. 사진을 찍어서 파는 게 불법인 줄 알았지만 용인됐다. 하지만 팬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공식 판매 루트가 생겼고 제한을 한다.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할 것 같으면 금지한다. 법적으론 정상화 과정이지만 2차 창작 시장에서 의미를 찾고 재미를 찾는 게 줄어들게 됐다.”

- 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이 팬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양가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교섭적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열심히 활동하는 것이 비즈니스적으로 이들에게 이익을 주고 영리를 추구하게 만든다는 걸 알지만 자신도 그만큼 즐겁다는 걸 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위하지만 요금이나 시간이나 마음을 적정선이 넘어가지 않는 정도까지만 준다. 이용자들도 똑똑하다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 위버스 '나나투어' 콘텐츠 판매 화면
▲ 위버스 '나나투어' 콘텐츠 판매 화면

- 최근 팬 플랫폼 차원에서 콘텐츠에 투자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유료로 독점 제공한 ‘나나투어’ 사례도 있다. 하이브는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얘기해볼 지점들이 있다. ‘나나투어’ 본편은 TV와 OTT에서 틀고 편집을 덜한 긴 완전판을 팬 플랫폼에서만 보여줬다. 예전에는 예능은 TV에서 보고 아티스트는 유튜브나 위버스에서 본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경계가 희미해진다. 보통 짧은 버전을 인터넷에서 보고 긴 버전을 TV에서 봐아 하는데 반대가 됐다. 독특한 변화다. 팬 플랫폼의 콘텐츠가 더 무거워지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여러 언어로 번역해서 해외 팬들에게도 보여주는데, OTT적인 특성이다.”

- 팬 플랫폼이 기존 미디어의 역할도 대체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독립미디어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요소들을 종합하면 ‘나나투어’의 사례는  차세대 K-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로서 가능성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국내 OTT 플랙폼이 해외로 진출하려는 고민이 많지만 잘 안 되고 있다. 그런데 웹툰과 팬 플랫폼은 플랫폼 자체가 글로벌에 진출해있다. 방송 콘텐츠를 웹툰플랫폼에 태우는 건 이상한 일이다. 팬 플랫폼에 스타가 나오는 콘텐츠를 태우는 건? 자연스럽다.”

- 또 어떤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익숙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팬층을 확보하는 면이 있다. 콘텐츠와 연계하면서 궁극적으로 ‘라이트 팬’을 많이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다. ‘라이트 팬’은 대중과 팬 사이의 존재다. 사실 팬 플랫폼 자체가 ‘라이트 팬’을 많이 늘리는 구조다. 구독제로 운영하다 보니 팬이 아닌데도 재미있거나, 유독 리액션을 잘해주는 아티스트를 구독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나투어’ 사례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으니 하이브는 앞으로 더 시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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