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고려거란전쟁’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17화부터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먼 내용이 부각되자 시청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원작자가 제작진이 원작자 견해를 존중하지 않았고 제작준비 도중 대본작가가 바뀌어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전개가 늘어난 점을 지적해 논란이 커졌다. 트럭시위와 시청자 청원 등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동문서답에 가까운 KBS의 해명

KBS는 청원 답변으로 “모든 대본은 이정우 작가가 직접 집필한 것”이라며 “역사적 자료를 통한 고증과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완성했다”고 했다. KBS는 다른 입장문을 통해 “(원작) 소설은 드라마의 참고 자료 중 하나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행간을 메우기 위해 작가의 상상력이 필요하다”며 “과장과 왜곡을 피하기 위해 역사서에 기초한 고증과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고 했다.

▲ 현종이 호족과 대립하는 모습. 사진='고려거란전쟁' 캡처
▲ 현종이 호족과 대립하는 모습. 사진='고려거란전쟁' 캡처

한 마디로 원작과 다른 전개는 문제 없으며 허구적 내용을 넣되 고증과 자문을 충실히 받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동문서답’에 가깝다. 시청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원작훼손’이 아닌 ‘역사무시’이기 때문이다. 황당한 전개에 의아해하던 차에 원작자의 문제 제기가 알려진 것이다. 원작자인 길승수 역사작가 역시 원작을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크게 벗어난 점을 지적해왔다. 트럭시위 문구를 보면 “원작핑계로 여론을 호도하지 마라” “함량미달 각본이 망친 대하사극, 논점은 원작이 아닌 역사왜곡”이라는 내용이 강조된다.

역사적 사실 크게 벗어난 대립구도 만들어

‘고려거란전쟁’은 17화부터 역사적 사실을 크게 벗어나면서 무리하고 단순한 대립구도를 양산해내고 있다.

드라마에서 현종과 강감찬이 대립하며 강감찬이 파직되고 현종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부상을 입게 되는데, 모두 허구다. 대립구도를 창작하고 큰 사건을 무리하게 넣었다. 원정왕후가 원성왕후를 질투해 그의 아버지인 김은부를 제거하려는 내용 역시 허구다.

▲ 대립하는 현종과 강감찬. 사진= '고려거란전쟁' 캡처
▲ 대립하는 현종과 강감찬. 사진= '고려거란전쟁' 캡처

현종이 무소불위의 호족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는 내용도 무리한 대립구도를 세워 역사적 사실을 뒤흔들었다. 실제론 현종에 앞선 광종, 성종 시대에 지방 제도 정비가 이뤄졌다. 지방파견 관리인 절도사와 현종을 개혁의 주체로 놓지만 현종은 피난길에 호족뿐 아니라 절도사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드라마에선 호족들이 연합해 맞서는데 호족연합 자체가 허구다. 

KBS ‘정통사극’ 가볍게 여겼던 건 아닌가

‘정통사극’ ‘대하사극’을 표방하면서 주요 인물의 설정과 주된 사건이 역사적 사실을 크게 벗어났으니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번 논란이 유독 컸지만 KBS의 ‘무리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선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이순신이 어렸을 적 악연이 있었던 것처럼 다뤘다. ‘대조영’에선 거란 출신 당나라 장수 이해고와 대조영의 대립 구도를 만들기 위해 삼각관계를 껴 넣고 이해고가 고구려 장군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까지 무리하게 껴 넣는다. ‘태조왕건’에선 제사를 지내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등 삼국지연의를 차용한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대왕세종’에선 명나라가 한글창제를 막기 위해 첩자를 보내는 내용도 있다.

▲ KBS '고려거란전쟁' 홈페이지 속 프로그램 소개
▲ KBS '고려거란전쟁' 홈페이지 속 프로그램 소개

KBS의 해명 가운데 사극이 모두 역사적 내용만 다룰 순 없다는 대목은 억울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사극도 어디까지나 드라마일뿐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다는 반론도 일리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착시’를 일으킨 건 다른 누구도 아닌 KBS다. 사극은 단순 재미로 보는 허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정통사극’ ‘대하사극’ 마케팅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KBS 대하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게 되고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홍보한다. ‘고려거란전쟁’ 홈페이지 소개란엔 ‘이제는 KOREA의 근원을 알릴 때, 세계는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임용한 역사학자는 KBS ‘머니올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렇게 지적했다.

“20~30년 전에 KBS 작가님이 전화를 했다. 당시에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고 글을 썼더니 너무 고맙다는 거다. 그래서 ‘제일 좋은 건 드라마를 역사로 믿는 걸 방지하는 거다. 그러려면 정통사극이라는 말을 버려라’고 하니까 전화를 탁 끊어버리더라. 정통사극 용어가 왜 나온지 모르겠지만 마치 역사를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걸 고쳐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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