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 정경희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가 걸려있는 언론개혁입법 작업이 드디어 구체화단계에 들어섰다. 열린우리당이 언론개혁 3개 법안을 의원총회에서 확정한 것이다.(17일)

박정희로부터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는 군사독재 32년을 끝장낸 지 11년만에야 비로소 자유롭고 공정한 언론의 기본틀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꿈을 담은 입법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이 나라의 신문들은 폭력과 공포의 탄압이 없는데도 김영삼 정부의 허망한 정치구호를 노래하는 합창단이 됐고, 김대중 정부 5년과 노무현 정부 초기 1년 동안 집권야당과 권력집단을 형성해서 사실상 이 나라를 지배해왔다.

특히 과점신문들은 독자들을 지배할 뿐 아니라, 여타 신문들의 제작방향을 제약하는 의제설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이 나라를 지배하는 과두(寡頭)지배체제의 정점에 서왔다. 이들은 매체가 아니라 직업적 정치꾼이요, 그 자체가 권력이었다.

이 언론과두천하에서 합리적 논리보다 증오(憎惡)가 난무하고 사회적 통합은 무너져, 우리는 6년 동안 위기의 살얼음판에서 삶을 영위해야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상황이다.

언론개혁은 그 위기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언론권력을 개혁해서 정상적인 언론매체로 환원함으로써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기로부터 구하자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될 여당의 3개 법안은 대체로 그동안 제기돼온 쟁점들을 담고 있다. 우선 독과점 신문의 기준을 1개 신문 시장점유율 30%, 3개 신문 합계 60% 이상으로 잡았다. 이 기준은 지난 5월초 열린우리당의 개혁과제준비 기획단 공동단장으로 지명된 김재홍 의원이 언급했던 ‘15% 이상’의 2배 수준이다.

소유참여가 편집권독립의 길

‘1개 업체 50%, 3개 업체 합계 75% 이상’이라는 공정거래법기준보다 엄격하지만, 신문이 국가경영에 직결된 매체임을 감안한다면 지나치게 느슨하다. 적어도 1개 신문 점유율 상한선을 20%로 잡아야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또 열린우리당은 신문사의 편집권독립을 위해 편집위원회설치와 편집규약제정을, 방송사에는 편성위원회와 편성규약제정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편집권과 편성권독립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문이다.

그동안 필자가 지적해온 것처럼 과거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몇몇 신문사에서 경험했던 편집권독립캠페인이 실패했던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신문이나 상업방송 모두 사기업으로 존재하는 만큼, 기업의 논리에 맞게 편집·제작종사자들도 ‘소유’에 참여함으로써만 편집·제작권의 독립이 보장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과점신문에게는 종업원 지주조합을 의무화해야만 편집권독립이 보장될 수 있다. 상업방송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1980년대 말의 경험이 남긴 교훈이다.

또 하나 민감한 문제는 신문시장의 정확한 실상파악이다. 열린우리당은 신문사가 발행부수와 구독료, 광고료 등의 경영정보를 문화관광부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물론 경영공개는 공정하고 독립된 언론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에서 특권을 누려온 언론권력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핵심 없는 개혁, 속빈 강정될 수도

적어도 신문발행부수와 구독료수입을 파악해야만 독과점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성격의 별도기구를 통해 파악, 처리하는 게 지나친 저항을 피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지역민방의 다른 지역민방에 대한 지분참여를 금지하도록 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필자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최병렬 공보처장관 시절 노태우 정권이 만든 서울지역 민방 SBS가 국내유일의 전국네트워크 상업방송이라는 ‘법외의 특권’을 끝내야할 것이다.(5월25일자 <관심권밖 방송개혁>제하의 본란).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신문개혁의 핵심인 과점언론사주의 지분제한을 포기했다. 그 이유로 지분제한이 ‘위헌’일 수 있다는 주장을 지적했다.

하지만 지분제한은 상한선을 웃도는 지분을 몰수하자는 게 아니라, 다만 일정한 기일 안에 처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지분제한은 이미 은행과 전기통신업에서 입법선례가 있다. 언론매체인 민영방송도 30%로 제한하고 있다.

막강한 신문권력집단과 맞서 개혁을 해야 될 열린우리당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문개혁은 이른바 조중동이 미워서가 아니라, 한국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지분제한없는 개혁은 결국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언론구성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싶다.

언론인/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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