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신하
지난 주말 9일은 558돌 한글날이었습니다. 신문ㆍ방송ㆍ인터넷 언론사들이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말글살이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기획기사, 특집기사, 분석기사를 실었습니다. 소재는 조금씩 달랐지만 주제의 공통점은 국어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우리 말글살이를 생각해봤습니다.

문법과 어법에 맞는 말을 써야 한다는 당위성말고 한가지 생각해볼 거리를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정치, 언론, 일부 학계에서 만연하고 있는 언어 악용, 언어 학대 현상입니다.

특히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언론인일수록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어휘와 문장, 말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임의로 규정하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의제를 독점하고 그 의제에 대한 판단까지도 독점하려는 탐욕스러운 모습까지 보입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악의적 이름 붙이기’ 수법입니다. 대중의 무의식 속에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된 어휘를 공격대상에게 계속 붙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웁니다. ‘복지’ 또는 ‘분배’라는 개념에 ‘좌익’ 또는 ‘좌파’라는 개념을 덧칠하고, ‘남북 화해’또는 ‘평화 통일’이라는 개념에 ‘주사파’또는 ‘친북’이라는 이미지를 덧칠합니다. 최근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면 ‘친북 용공 좌익’이요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면 ‘수구 보수 냉전세력’으로 몰리기 십상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말과 글을 악용하고 학대하는 현상은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애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어 학대가 만연하게 된 원인과 책임을 판가름한다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 그릇된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의적 이름 붙이기’’악의적 이미지 칠하기’의 최대 수혜자가 ‘친일파와 그 후예들’,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 ‘냉전 세력’,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는 다른) 수구적 보수세력’이라는 점에서 그 같은 사실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이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언론만 제자리를 지켜준다면 ‘언어 학대’는 막을 수 있는데, 요즘 언론 특히 일부 수구성향의 보수 언론들이 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참으로 갈 길이 멀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공추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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