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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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성 조각사유’는 기자들의 ‘숨구멍’이다. 오보여도 공익성‧진실성‧상당성이 있다면 법적 처벌을 면한다. 오늘날 명예훼손 손해배상 면책사유는 앞선 세 가지 조건에 더해 ‘악의성의 부존재’가 추가됐다. 허위 보도였어도 배상 책임이 면책된 사건에 공통점이 있을까.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교육본부장의 최근 발표한 국민대 박사논문 <허위 보도에 대한 언론의 책임성 연구>에선 우리나라 법원에서 선고된 허위 보도 손해배상 면책판결 사례 67건을 분석했다. 

67건 중 61건은 2000년대 이후 나왔다. 허위 보도지만 손해배상청구가 기각된 첫 판례는 1984년이다. 1982년 5월27일자 동아일보 <불구도 서러운데…장애자 기술 가르쳐준다며 회비 착복> 기사는 수사 결과 횡령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며 허위로 판명났다. 그러나 법원은 취재 내용이 진실이라 믿은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상당성’을 인정해 손배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보도기관에 특별한 조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도에 요구되는 신속성을 위해 조사에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거에 고도의 확실성을 요구할 수 없다”고 했다. 

1998년 7월9일자 경향신문‧세계일보는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을 보도했으나 훗날 허위로 드러났다. 법원은 “유해 식품에 관한 것으로 신속 보도의 필요성이 있을 때는 조사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 취재원이 수사를 담당했던 부장검사였던 점, 주요 피의자들이 구속돼 취재가 어려웠던 점 등도 면책판결에 영향을 줬다. 2001년 1월14일자 일요신문은 주병진씨 성폭행 혐의를 기사화했는데, 주씨는 1심 유죄 이후 최종 무죄를 받았다. 법원은 “강간 치상 혐의 상태에서 대가를 주고 성적 대상을 소개받는다는 것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봤다.

논문에 따르면 ‘위축 효과’는 “허위 보도가 왜 언론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하는지 설명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법원은 “자유로운 견해의 개진과 공개된 토론 과정에서 다소 잘못됐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다”면서 “무릇 표현의 자유에는 그것이 생존함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논문에 따르면 “법원은 국민의 자기 통치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또 자유롭고도 공개된 경쟁을 통해서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허위 보도에 대해서는 면책의 관용을 베푸는 입장”이다. 

▲AI 빙이미지크리에이터로 생성한 '미디어 아트로 표현한 허위 기사를 써서 법정에 선 기자들의 괴로운 모습'.
▲AI 빙이미지크리에이터로 생성한 '허위 기사를 써서 법정에 선 기자들의 괴로운 모습(미디어 아트)'.

법원은 손배 면책을 위한 ‘상당성’ 판단에 있어 ‘근거자료의 신빙성’에 주목했다. 구체적으로 사안의 시급성, 표현 방법, 사실 확인의 용이성, 피해 정도, 당사자 접촉 및 입장 반영 유무 등이 판단 요소였다. 논문은 “보도 시급성이 높을수록 상당성 요구수준이 낮아지고, 시급성이 덜한 경우 요구수준이 높아졌다”고 했다. 손해배상 면책판결 67건을 원고유형별로 보면 고위공직자가 24건, 언론사가 12건이었다. 언론사의 경우 KBS‧MBC‧조선일보가 각각 3건이었다. 법원은 원고가 언론사인 판결에서 “언론 자유를 누리는 범위가 넓은 만큼 자신에 대한 비판 범위도 그만큼 넓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논문에 의하면 1990년대 언론사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 패소율은 72.7%에 달했으며, 평균 손해배상 인용액은 3702만 원, 중앙값 인용액은 2000만 원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언론사들은 소송에서 쉽게 졌고, 또한 상대적으로 고액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했다”는 것. 하지만 논문은 “2010년대의 경우는 확연히 달라졌다. 언론사가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하는 연간 비율은 단 한 번도 50%를 넘기지 않았고, 손해배상 인용액 또한 평균값이나 중앙값 모두 1990년대에 비해 월등히 낮아졌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던 배경이다. 

저자는 논문에서 “언론의 자유와 보도 대상자의 인격권 간 충돌이 ‘외부적 충돌’이라면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진실 보도 의무 간 충돌은 ‘내부적 충돌’”이라면서 “진실 보도 의무가 있는 언론이 다른 표현행위자처럼 위축 효과를 이유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는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언론의 허위 보도에 관한 최근의 사회적 논의가 지나치게 엄벌주의로 흐르는 것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저자는 “허위 보도였어도 면책된 사례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 단순 오보와 허위 조작 정보의 경계, 정당한 의혹 제기와 무책임한 폭로 사이의 경계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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