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으로 언론 앞에 선 적이 없다. 2024년 기자회견을 건너뛴다면 취임 2년 연속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신년 기자회견 개최 여부에 대한 대통령실 결정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언론은 임계치에 도달한 듯 연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현안을 털고가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대통령과 기자의 김치찌개 식사, 즉 기자환담회가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할 방안으로 거론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실제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주고 같이 음식을 먹는 자리를 갖는다면 어떤 그림이 연출될까.

▲ 2022년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2022년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과거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23년 5월 2일 대통령실 기자단은 이틀 후에 개장하는 용산어린이정원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었다. 이때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했고, 예정에 없던 환담회 형식의 자리를 가졌다.

당시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있어 대통령의 국정 평가와 전망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환담회 자리는 그야말로 대통령과 기자들이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고가는 자리가 됐다.

대통령 발언을 기자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헤드테이블에 앉은 소수의 기자가 질문하고 대통령이 답했다. 대통령실 참모진 테이블에 앉은 기자들은 대통령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오고간 대화 내용 몇가지를 소개한다.

기자 “대통령님, 혹시 ‘아메리칸 파이’ 어떻게 부르셨는지 직접 들을 수 있을까요? 그게 제일 궁금한데요” (일동 웃음)

윤석열 대통령 (앞 답변 내용 중략) “갑자기 바이든 대통령이 무대 위로 내게 올라와 달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질 바이든 여사가 손을 잡고 올리고 (일동 웃음) 내가 약간 당황스럽고, 집사람도 옆에 앉았거든요. 질 바이든 여사가 여기에 앉고요. 보니까 가라고 그래서 올라갔더니, 돈 맥클린 사인한 기타 준다는 것은 만찬장 직전에 내가 들어서 이게 기타 주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그러고, 누가 저쪽에서 기타를 들고 있어요. 저것을 선물 받는구나 그랬더니 바이든 대통령이 ‘I want you to sing American Pie.’ 하더라고요. 내가 가사도 생각이 안 난다고…, 만찬이나 전날 친교 행사를 굉장히 정성스럽게 준비했는데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 가지고 앞에 1절 한 소절 그것을 그냥, 근데 부르니까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일동 웃음) 옛날에 많이 불렀던 것이라 생각이 나는 거예요. 만약에 가사가 생각이 안 났으면 아주 망신당할 뻔했어요. (웃음) 내가 거기 노래 하러 간 것도 아니고 그냥 뮤직 가이드까지 하면 된다, 거기는.” (일동 웃음)

기자 “대통령님, 너무 하버드급 질문이 계속 나와서 저는 약간 비하버드급의 질문을, 대구에서 시구하실 때도 연세나 그동안의 커리어에 비춰 봤을 때 공을 잘 던지신다 이런 평가도 있었고, 이번에 만찬 노래도 다들 놀랐지 않습니까? 그리고 의회 연설도 다들 놀라는 분들이 많을 테고, 그래서 스타덤이 그 전과 비교해서 생기신 것 같은지, 그다음에 스타덤을 실감하고 계시는지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이라는 직책 자체가, 스타라는 것이 딴 게 뭐 있겠어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인지도죠. 그러니까 대통령이라는 직업 자체가 스포츠 스타나 또는 문화예술계 스타처럼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더 잘할 수 있겠죠. 그런데 모르겠어요. 저도 시작할 때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스타성 있는 일, 이게 약간 어색하더라고요. 그런데 1년 지나면서 좀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말이에요, 정치 처음 시작할 때는 TV 토론 인터뷰한다고 방송국을 가니까 분장실로 데려가서 막 하는데 그때 내가 정치 괜히 시작했구나 (일동 웃음) 나는 살면서 헤어드라이기 한번 안 써본 사람인데, 수건으로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던 사람인데, 얼굴에 로션도 발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일동 웃음)

기자 “대통령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해 주실 건가요? 저희가 많이 궁금해하고 있어서요.”

윤석열 대통령 “1년 동안 뭘 했고, 어떤 변화가 있었고, 이런 것은 국민들과 공유하고, 또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 변화를 끌고 할 것인지, 개혁, 혁신, 이런 것보다는 저는 그냥 변화라는 것을, 이게 아무래도 개혁 하면 순간적인 것 같고, 변화라는 것은 지속적인 것이니까, 이게 함께하는 것이니까 그런 것을 보여는 주고 싶은데, 기자회견이 될지 간담회가 좋을지, 홍보수석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기자 질문 중엔 개각 개편 방향, 한미회담에 대한 중국 반응 등 현안 이슈 내용도 나왔지만 개각에 대한 답은 들을 수 없었고 중국 반응에 대한 답변은 원론에 그쳤다.

그나마 소득이 있었던 것은 중단된 도어스테핑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윤 대통령은 “사실 지금도 습관이 돼서 꼭두새벽에 눈을 떠서 언론 기사 스크린을 다 한다”며 “도어스테핑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지금 용산의 우리 수석과 비서관, 행정관들은 거의 꼭두새벽부터 제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 대한 대통령의 속을 알 수 있는 답변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번 취임 1주년에 기자 간담회나 회견을 안 하느냐,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 보려고 그래요. 거기에서 저도 우리 용산 스태프한테 취임 1주년을 맞아서 뭐를 했고 뭐를 했고 하는 그런 자화자찬의 취임 1주년은 절대 안 된다고 해 놔서, 여러분과 그냥 이렇게 맥주나 한잔하면서 얘기하는 그런 기자 간담회면 모르겠는데, (일동 웃음) 무슨 성과 이래 가지고 자료를 쫙 주고서 잘난척하는 그런 행사는 국민들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여러분이 지난 1년 많이 도와주셔 가지고 굉장히 감사하고, 앞으로 나라를 더 잘 변화시킬 수 있게 여러분과,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함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대통령은 이날 70분 동안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취임1년을 앞두고 기자와 함께한 편한 자리로 남았다.

때때로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기자회견은 대통령의 격식을 갖춘 답을 요구하는 자리이다. 국민이 생중계로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는 현장이다. 불편한 질문에도 답해야하는 공직자의 의무를 검증하는 현장이다. 대국민기자회견과 기자환담회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환담회는 소통의 일환으로 기자회견과 별개로 ‘플러스 알파’의 개념이지 기자회견을 대체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기자들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준다고 하면 김밥 떡볶이를 먹었던 1년 전 기자환담회와 별 다를게 없다. 대통령과 소수의 기자들이 앉은 헤드테이블이 존재하고, 음식 앞에서 대화 수준의 내용이 오간다. 현안 이슈 질문이 나오겠지만 대국민메시지에 준하는 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치찌개 식사로 대국민기자회견을 대신하겠다고 하면 차라리 하지 않는게 좋다. 김치찌개는 혼자 먹어도 맛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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