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린 가운데 힘겹게 신문배달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폭설이 내린 가운데 힘겹게 신문배달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한때 석간이었던 지역신문 배달 일을 한 적이 있다. 오후에 신문을 돌리기 때문에 신문을 보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친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 노래방 카운터에서, 손님 웃음소리와 헤어스프레이 가스가 뒤섞인 미용실에서도 사람들은 신문을 챙겨 본다. 재료 준비로 바빠서인지 주인의 분주한 뒷모습만 기억나는 곱창집도 있다. 이런 가게에 신문을 두고 뒤돌아 나올 때면 기분이 꽤 괜찮다. 유쾌하지 않은 냄새나 소음이 가득해 활자에 도무지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곳에서도 신문을 포기하지 않는다니. 악조건도 극복하며 볼 만큼 중요한 것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 신문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났다.

신문 배달부 자부심에 금이 간 일이 있었다. 신문 구독료를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나간 날이었는데, 나의 자부심에 금을 가게 한 말은 단순히 비싸다는 항의가 아니었다. “〇〇일보가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나 올리나”류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 같이 배달했던 전국지가 구독료를 올렸을 땐 없었던 말이다. 지역 사람이 지역 신문을 전국지와 비교해 낮춰보며 한 말을 들었던 때가 10년도 전인데, 어릴 때 들었던 말이 아직 기억 나는 걸 보면, 자부심 갖고 있는 신문 배달부로서 또 지역 사람으로서 속상했던 것 같다. 독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겠지만, 지역 소식은 잘 싣지 않는 전국지와 비교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역 신문이 열악한 상황에 놓인 걸 보면 더 눈여겨본다. 충청지역 언론 디트뉴스24 노조원들을 만나러 청주에 갔었다. 그들은 사무실로 보기엔 애매한 아파트 건너편 작은 도서관에 있었는데, 사측이 사무실이 없는 곳으로 발령을 낸 탓이다. 대주주가 대전시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를 해고하려 하자 그 일을 계기로 노조를 만들었는데, 이에 보복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근 이 회사는 또 노조원을 해고하려 했다. 충청지역 다른 언론 충청리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충청리뷰는 검찰 예산 검증 보도를 내려 했는데, “대주주가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기사와 칼럼이 막혔다. 기사를 쓸 수 없자 이곳 기자들은 신문사를 나왔다. 

언론사의 대주주인 지역 기업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침 7시 집을 나서 법원도서관으로 향했다. 충청리뷰 대주주는 개인이지만, 그가 임원으로 있는 회사가 실질적 대주주라는 게 지역 기자들 증언이다. 이 기업 회장, 임원은 비자금 조성 등으로 2012년 유죄를 선고받았다. 판결문에서 확인한 대주주는 42억이 넘는 회삿돈을 가로챘다. 이 돈으로 기부하고, 기자에게 돈도 줬다. 가격 담합으로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도 받았었다. 지역의 주요 감시 대상인데, 뉴스에선 이 기업의 기부 소식만 넘쳐난다. 언론사 주주가 돼 자사에 대한 감시를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 회사는 청주방송 등 지분도 갖고 있다.

지역 신문 배달부로서 가졌던 자부심을 디트뉴스24와 충청리뷰 기자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들 기사를 찾아보면, 지역 권력을 꾸준히 감시해 왔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 노래방 카운터에서, 손님 웃음소리와 헤어스프레이 가스가 뒤섞여 숨쉬기도 불편한 미용실에서, 뒤돌아볼 여유도 없는 주인이 있는 곱창집 같은 가게에 이들이 쓴 뉴스도 전해졌을 것이다. 오랜 세월 기자를 해오다 하루아침에 자리를 빼앗긴 이들의 마음을 아직도 기자라는 말이 낯선 내가 알 순 없지만, 신문 배달부로서 자부심은 당신들이 쓴 기사가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지난해 2월 8일 신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자본 권력 등이 신문사업자로 등록할 때, ‘편집의 자유와 독립, 독자의 권리 보호 방안 등을 담은 편집·제작 운영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주주가 편집권을 침해할 수 없다. <뉴스어디>는 이들 매체보다 작지만, 지역으로 갈수록 이런 문제적 대주주가 판을 치는데 이 법이 통과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볼 생각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