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가락’ 논란에 대한 게임업체 넥슨의 강경 대응을 비판한 한겨레 사설 일부가 독자 공지 없이 수정됐다. 수정 전후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한겨레는 지난 5일 온라인에 <혐오 부추긴 ‘집게손’ 파문, 기업 사회적 책임 어디 갔나>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게시했다. 6일 자 지면에 실리는 사설이 전날 온라인에 먼저 출고된 것이다.

▲ 한겨레 6일 자 사설.
▲ 한겨레 6일 자 사설.

한겨레는 “게임업체 넥슨이 최근 자사의 게임 홍보 영상에 등장하는 ‘집게손가락’이 남성 혐오를 상징한다는 남초 커뮤니티의 황당한 주장에 따라 영상 제작 협력업체를 상대로 과도한 ‘갑질’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글로벌 게임사인 넥슨이 혐오세력의 황당한 ‘음모론’에 장단을 맞춰 협력업체를 죄인처럼 추궁하다니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집게손’ 사건은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 넥슨 홍보 영상에 ‘집게손가락’ 자세가 부자연스럽게 등장한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이 과정에 영상 제작 협력업체 직원이 지목되어 사이버 조리돌림을 당하고 넥슨이 관련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는 등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이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반발하는 ‘집게손’은 여성 혐오를 남성에게 ‘미러링’하는 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비롯한 것으로 한국 남성 성기가 작다는 조롱 의미의 ‘밈’으로 온라인에서 공유돼 왔다.

하지만 넥슨 영상에 등장하는 집게손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지 확인된 적 없으며, 사실상 확인이 불가하다는 점에서 심증에 기댄 마녀사냥, 조리돌림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한겨레는 “넥슨은 사실관계 조사도 없이 ‘협력업체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내고, 관련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며 “자신들이 대본과 영상을 수차례 확인해놓고도 악성 유저들의 ‘마녀사냥’에 확인도 없이 하청업체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설 중 문제가 된 대목은 마지막 문단이다. 한겨레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넥슨 게임 이용자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혐오 표현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자발적인 기부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는 소식”이라며 “기부 릴레이 3일 만에 기부 금액만 6000만 원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넥슨은 자사 게임 이용자들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진 말기 바란다”고 썼다.

이는 한겨레 논설위원이 넥슨 게임 이용자들이 푸르메재단 및 산하 병원에 기부한 내역을 인증하고 있다는 기사 내용을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집게손’을 혐오 표현이라고 판단한 넥슨 유저들이 “혐오 표현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기부하고 있다는 기사를 잘못 인용한 것.

관련 소식을 전한 전자신문은 “손가락 논란이 성별 갈등으로 치닫고 콘텐츠 수정을 위해 고생을 하는 넥슨 임직원까지 무분별한 비난을 받기 시작하자 혐오 대신 선행으로 대응하자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넥슨은 2016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개원 후 매년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비춰보면, 기부 릴레이는 하청업체 등에 대한 넥슨의 대응을 지지하는 유저들의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후 한겨레는 해당 문단을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뒤 위협·협박에 시달리는 한국여성민우회 등 일부 여성단체에 대한 후원의 응원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넥슨은 여성 혐오에 빠져 있는 일부 이용자들만 바라보지 말고, 기업 이미지와 미래를 고민하며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더 주목하기 바란다”고 수정했다.

▲ 수정 전 한겨레 사설(위), 수정 후 한겨레 사설(아래).
▲ 수정 전 한겨레 사설(위), 수정 후 한겨레 사설(아래).

사설 데스킹을 맡고 있는 권태호 한겨레 논설위원실장은 7일 통화에서 “내부에 ‘(기부 주체와 관련해)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고, 지면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논란이 없는 부분으로 수정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권 실장은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에 응원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고 명확한 내용이니, 그 내용으로 교체했다”며 “기부 주체를 의도적으로 바꾸려 한 것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으나, 의도성은 없었고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권 실장은 사설 수정에 대한 입장을 따로 내느냐는 질문엔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홈페이지 해당 사설에는 300여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비판 댓글이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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