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 ‘이희진 사기’ 피해자 모임 37명.
피고 : 이희진, 이희문, 오픈에이아이, 한국경제TV.
사건 : 손해배상 청구소송.
결과 : 원고 일부 승소 판결.
선고일 : 2023년 11월10일.
재판부 :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2부 재판장 최욱진, 김재원, 김민기 판사.

한국경제TV가 대형 사기극을 벌인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의 증권방송을 유료 구독·시청한 회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2부(재판장 최욱진)는 이희진 사기 피해자 모임(37명)이 이씨와 동생 이희문씨, 이들 형제가 실질적 지배·운영한 오픈에이아이, 한국경제TV를 상대로 낸 26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피고들이 총 7억5000여만 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 가운데 1억여 원은 한경TV가 이희진 형제 등과 공동하여 배상해야 할 몫이다.

▲ 과거 한국경제TV에 출연한 이희진씨 사진=방송화면 갈무리.
▲ 과거 한국경제TV에 출연한 이희진씨 사진=방송화면 갈무리.

이씨는 2012년 8월부터 2016년 9월 사기 혐의로 체포될 때까지 한경TV가 운영하는 증권방송 사이트 ‘와우넷’에서 증권 전문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증권방송 등을 통해 허위 정보를 제공하며 총 292억 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1월 대법에서 징역 3년6개월, 벌금 100억 원, 추징금 122억여 원이 확정됐다. 동생 이희문씨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들 형제는 지난달 4일에는 900억 원에 달하는 코인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희진 사기’ 피해자들은 지난 2020년 12월 “한경TV는 이희진을 자신의 사업 조직인 와우넷의 일부로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희진을 지휘·감독할 지위에 있다”며 이씨, 한경TV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경TV가 이희진의 사용자로서 불법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이희진은 한경TV가 제공하는 와우넷을 이용해 문제된 주식 추천 등 주식 방송을 했다”며 “한경TV는 이희진의 범행을 충분히 알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방조했기 때문에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반면 한경TV 측은 “형사 판결만으로 이희진이 한경TV 증권방송을 통해 허위 또는 객관적 근거가 없는 투자 정보를 제공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들(이희진 사기 피해자들)이 매수한 비상장주식 대부분은 실제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는 점에서 이희진이 제공한 투자 정보가 허위 또는 객관적 근거가 없는 정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경TV 측은 “한경TV는 플랫폼 사업자에 불과할 뿐 이희진이 하는 주식방송 내용 등에 대한 지휘 및 감독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원고들은 이희진의 주식 매수 추천 행위가 한경TV에서 허용되지 않는 위법 행위라는 점을 알았거나 적어도 알지 못한 데 있어서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도 했다.

▲ 피카코인 시세조종 연루 의혹을 받는 이희진씨가 지난 9월15일 오후 사기·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에는 이씨의 친동생 이희문씨와 코인 발행업체 직원 김모씨도 함께 출석했다. ⓒ연합뉴스
▲ 피카코인 시세조종 연루 의혹을 받는 이희진씨가 지난 9월15일 오후 사기·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에는 이씨의 친동생 이희문씨와 코인 발행업체 직원 김모씨도 함께 출석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한경TV가 이씨의 사용자로서 그 책임이 있을 뿐더러 이씨의 불법 행위를 방조한 데 대한 공동불법행위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한경TV는 이희진과 같은 ‘전문가’들과 체결하는 ‘전문가방송 계약’에서, 이희진과 같은 ‘전문가’들이 거둬들이는 수익의 50% 가까이를 배분받았다”며 “이런 점을 볼 때 한경TV는 단순히 이희진과 같은 ‘전문가’들에게 인터넷 방송 플랫폼만 제공하고 그 플랫폼 제공 대가로서 수수료 일부만 수취하는 등의 수준을 넘어서서 사실상 ‘전문가’들과 동업하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한 수준이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한경TV가 이희진과 와우넷에 독점적으로 방송을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계약 조항을 담았다는 점 △이를 위반하면 계약을 해지하고 위약금을 징구하는 계약 조항을 둔 점 △한경TV가 이희진 등이 와우넷에서 방송한 내용에 대한 지식재산권 전부를 갖고 이를 2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 또한 유보해둔 점 △한경TV가 이희진이 운영하던 비상장주식 거래 사이트를 인수해 그와 거의 유사한 상호로 사이트를 운영한 점 △이희진의 비상장주식 추천 및 매매 행위에 대해 외형상 한경TV와 관련성 있어 보이는 조치를 다수 취했다는 점 △한경TV가 이희진 등의 방송 내용에 실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와 수단을 다양하게 마련해둔 점을 언급하며 한경TV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씨가 자신이 운영한 회사 등을 통해 매매 차익을 얻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시하지 않은 채 증권 매수를 추천하거나 주식 상장 여부, 시세, 추천가, 목표가, 미공개 정보 등에 관해 객관적 근거 없이 허위 고지한 불법행위는 투자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한 한경TV의 사무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한경TV에 이희진의 모든 주식 방송 내용을 사전 검토하는 등의 권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비상장주식 투자 자체가 상당한 투자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점 △한경TV가 이희진을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방송 계약을 체결하고 그 수익의 50% 안팎만을 분배받은 점을 고려해 “한경TV 책임은 이희진 등의 책임의 30%로 제한함이 타당하다”고 했다. 판결 후 이씨와 한경TV는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