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를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당 안팎에서 또다시 약속을 내팽개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은 29일 의원총회를 열어 현재의 선거제도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민의힘이 주장하듯 병립형으로 회귀하거나, 현행대로 하되 위성정당 창당이 가능하도록 할지, 아니면 적어도 위성정당은 금지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할지에 대한 논의를 하려 했으나 이를 하루 순연했다. 정치개혁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쪽과 국민의힘에 1당을 내어줄 수 있다는 현실론의 갈등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특히 이재명 대표의 발언이 갈등에 불을 지폈다. 이 대표는 지난 28일 오후 유튜브 방송 ‘간병비 문제 직접 들어보니’에서 정치개혁 문제를 이상과 현실론에 빗대어 “정상적인 정치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우리도 상식과 보편적인 국민 정서, 이런 것을 고려해서 적정한 타협 대화 이런게 가능하겠죠. 근데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지 않느냐”며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집권여당에 넘어가면 이 폭주, 과거로의 퇴행과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말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며 “현실의 엄혹함이라고 하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이상과 현실 그중에서 현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선거라고 하는 거는 승부 아니냐”며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있겠어요”라고도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생중계한 유튜브 방송에서 위성정당 창당이 가능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변경과 관련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명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생중계한 유튜브 방송에서 위성정당 창당이 가능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변경과 관련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명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 같은 주장에 일부 친명계 의원이 동조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현행 제도를 용납할 수 없다면서 위성정당이라도 만들겠다고 하는 현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당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위성정당 방지법을 두고 진 의원은 “그 법으로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거나 금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현실론을 제기했다. 진 의원은 특히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방침인데 원내 제1당이 무너지고,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될 (경우) … 윤석열 정권을 견제하거나 그 퇴행을 막기는커녕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며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선거 제도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가지고 임하겠다? 그건 용납하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위성정당 금지법 발의 의원들(75명)과 정치개혁 약속 촉구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에게도 진 의원은 “민주당에 소속되어 있는 의원들께서 다당제가 지고지선이다라고 자꾸 주장하면서 민주당의 의석을 헐어가지고 다른 소수 정당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하게 하자라고 하는 주장을 하는 게 자기모순”이라며 “(그분들은) 민주당에 남아서 정치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다른 정당을 해야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내에서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2월27일 민주당이 의총에서 △위성정당 방지 기반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대통령 4년 중임 및 결선투표제 개헌 △지방선거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확대 등을 당론으로 채택했을 뿐 아니라 이재명 대표 자신도 다당제를 공약으로 내걸어놓고 또다시 뒤집으려느냐는 지적이다.

당내 비명계 의견그룹인 원칙과 상식은 29일 성명을 내어 “이렇게 버젓이 기록에 남아있고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민주당, 대체 뭐하고 있는 것이냐”며 “말 바꾸고, 약속 뒤집는 것도 모자라 이젠 대놓고 거꾸로 갈 작정인가”라고 반문했다. 원칙과 상식은 “한낱 기득권 지키겠다고, 국회의원 뱃지 한번 더 달겠다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민의힘 이겨보겠다고 결의 따위, 약속 따위, 모른체 하면 그만이냐”며 “대선 결과 상관없이 반드시 정치 바꾸겠다 했고, 당의 명운까지 건 약속이었다. … 우리 이대로, 정말 괜찮으냐, 우리의 자존심, 우리의 자부심이었던 그 민주당, 맞느냐”고 비판했다.

▲이학영 의원을 비롯해 위성정당금지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민주당의 선거제도의 위성정당 가능 현행제도 존치나 병립형으로 회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국회 기자회견장 영상 갈무리
▲이학영 의원을 비롯해 위성정당금지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민주당의 선거제도의 위성정당 가능 현행제도 존치나 병립형으로 회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국회 기자회견장 영상 갈무리

이학영 의원과 함께 위성정당금지법을 발의한 강민정, 김두관, 민병덕, 민형배, 송재호, 장철민 의원 등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 민주당은 지금 국민과의 약속과 눈앞의 이익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기득권을 내려놓을 것인지, 기득권을 쥐고 자멸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며 “병립형과 위성정당은 소탐대실”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비례 몇 석 얻으려다, 중도층이 등을 돌리고 지역구는 더 많이 잃게 될 것”이라며 “민주당이 정치개혁을 팽개치고, 국민의힘과 퇴행에 함께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무슨 염치로 국민께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이들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는다고 민주당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민주당과 연대 또는 연합할 정당이 의석을 갖게 되고, 다당제 연합정치를 주도하고, 국민의힘은 고립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반대로 “병립형 회귀와 기득권 고수는 참패와 자멸의 길”이라고 했다.

앞서 이탄희 의원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용인정에도 불출마할테니 연동형 비례선거제를 사수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날 김상희 의원(경기 부천병, 4선) 등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75명이 공동으로 ‘위성정당 방지법(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9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의 지역구 불출마를 내걸면서 연동형비례선거제를 사수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국회 기자회견장 영상 갈무리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9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의 지역구 불출마를 내걸면서 연동형비례선거제를 사수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국회 기자회견장 영상 갈무리

정의당과 진보당도 민주당의 이 같은 기류에 반발했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예방에서 “당과 대표님 차원에서도 여러 고심이 많을 것이”이라면서도 “그러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대표님께서 ‘이제는 제3의 제4의 제5의 선택이 가능한 다당제 선거제도 개혁, 정치교체 확실하게 해내겠다’라고 외치셨던 연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해서 최소한 병립형으로의 퇴행은 막는 유의미한 결단을 해서, 문재인 정부 시절 촛불 탄핵연대를 무색하지 않게 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정부를 핑계로 퇴행의 뜻을 보이는 것은 스스로 명분 없는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라고 우려했다.

손솔 진보당 수석대변인도 지난 28일 논평에서 “민주당은 절대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며 “선거제 논의의 출발은 자당의 유불리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국민들 앞에 허심하게 사과하는 ‘맹성’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손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가 (1년 전) 직접 굳게 약속한 정치개혁 공약을 이제 와서, 오직 자당의 유불리만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 뒤집어서도 절대로 안 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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