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정상적으로 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비정상의 정상화인거죠. 지난 정권 5년 동안 가짜뉴스 단속했습니다.”

지난달 26일 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현재 방통위가 추진하는 ‘가짜뉴스’ 대응이 위법적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반박하며 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 때도 ‘가짜뉴스’ 규제를 추진했던 건 사실이고 논란이 된 심의 사례도 있다. 그러나 당시와 현재에는 기관장이 소신을 가졌다는 점, 언론 보도는 예외로 뒀다는 점, 격론 끝에 ‘자율규제’를 우선하기로 했다는 점에선 차이가 있다.

이낙연 총리가 요구한 ‘가짜뉴스 규제’ 
방통위원장은 ‘자율규제 우선’ 소신행보

“범정부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방안 합동 브리핑 공지”. 2018년 10월7일 일요일. 합동브리핑 전날, 방통위 출입기자들에게 급작스럽게 온 통보 문자다. 10월8일 국무회의 직후 범정부 대책을 발표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10월8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브리핑실에 모인 기자들은 끝내 브리핑을 듣지 못했다. 방통위는 “발표가 연기됐음을 알려드린다”고 했지만 끝내 범정부 대책은 발표되지 않았다.

▲ 이효성 전 방송통신위원장(왼쪽)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이효성 전 방송통신위원장(왼쪽)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기자들이 국무회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취재한 결과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낸 ‘허위조작정보 대응 범정부 종합대책’이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낙연 총리는 이 정도로는 ‘가짜뉴스’ 문제 해결이 어렵다며 이효성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한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언론학자 출신으로 ‘가짜뉴스’ 규제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당시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종합대책 문건에 따르면 방통위는 ‘허위조작정보 관련법 제정’ 과제 이외엔 이미 운영되는 제도 중심의 ‘통신심의 강화’ ‘임시조치 적용’ ‘자율규제 강화’ ‘부처별 모니터 실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등의 방안을 내놓았고, 총리 측에선 이 안이 지나치게 온건하다고 본 것이었다. 당시 방통위 관계자에 따르면 ‘가짜뉴스’ 규제의 오남용 소지를 고려해 현재 있는 제도 중심의 안을 냈다. 

2019년 7월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중도 사퇴했다. 당시 박대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정부는) ‘가짜뉴스’를 ‘범죄와의 전쟁’ 선포하듯 몰아붙이고 있는 반면 이 위원장은 이와는 다소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며 “누군가 이 위원장에 사퇴를 종용, 압박한 것 아닌가”라며 반발했다. 국민의힘이 당시 이효성 방통위원장의 행보를 ‘소신 행보’로 본 것이다. 

당시와 현재 모두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가짜뉴스 대응’ 기조가 강하다는 점은 유사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이낙연 총리가 자신을 향한 허위정보를 비판한 일을 계기로 규제를 촉구했다. 2018년 10월2일 이낙연 총리는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입니다. 증오를 야기해 사회통합을 흔들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민주주의 교란범”이라고 했다.  이번 정부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가짜뉴스’ 문제를 공개 석상에서 여러차례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방통위원장이 일정 부분 견제 역할을 한 것과 달리 현재는 방통위가 ‘가짜뉴스 대응’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보궐 임명된 한상혁 위원장
오랜 논의 끝에 “언론은 제외” “단순해결책 지양”

이후 보궐로 지명된 한상혁 방통위원장 후보자 청문회 당시 국민의힘은 ‘가짜뉴스를 때려잡으려 임명된 위원장’이라며 가짜뉴스 규제의 부당함을 적극 강조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임명 후 별도의 가짜뉴스 규제책을 마련하지는 않았다. 이효성 위원장 때부터 추진된 ‘허위조작정보에 관한 전문가회의’ 논의를 이어 받았고 2020년 3월11일 방통위는 전문가회의 논의 결과인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을 보고 받아 채택했다.

당시 결론은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허위사실임을 알면서, 정치적 경제적 이익 등을 얻을 목적으로, 정보 이용자들이 사실로 오인하도록 생산·유포된 모든 정보”로 정의하고 “언론중재법에 의한 언론사의 기사, 패러디, 풍자, 정치적 견해 등은 제외”한다고 밝혔다. 기본원칙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려는 노력 필요 △정보·절차의 투명성 확보 노력 필요 △단순한 해결책 지양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 필요 등을 담았다. 

이는 현재 방통위의 행보와 상반됐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체제에선 ‘전문가 논의’에 앞서 ‘규제’부터 시사했다. 이동관 위원장은 청문회 때부터 “가짜뉴스를 만든 언론사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이후 △방통위 내 가짜뉴스 전담 기구 설립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언론사 대상 사상 첫 심의 △ ‘심의 중’인 사안을 포털에 공표하게 하거나 우선 삭제하도록 하는 가짜뉴스 대응 패스트트랙 도입 △원스트라이크 아웃 및 가짜뉴스 만든 종사자 갈아타기 방지법 입법 추진 등을 했다.

▲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문가협의 등 논의를 거쳐 낸 결론인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
▲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문가협의 등 논의를 거쳐 낸 결론인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

전문가 논의를 우선하고 ‘신중한 접근’을 한 것과 달리 방통위 차원에서 규제 결론을 내놓고 논의를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특히 한상혁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가짜뉴스의 기준으로 “언론사 기사는 제외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단순 해결책 지양”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려는 노력” 등의 원칙을 정한 것과는 대조적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용어에도 차이가 있다. 현재 방통위는 공식 문서와 보도자료에도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쓴다. 2019년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가짜뉴스를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 청원 답변을 통해 “해외 주요국가에선 가짜뉴스, 즉 ‘페이크 뉴스(fake news)’란 단어의 의미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허위조작정보, 즉 ‘디스인포메이션(disinformation)’이라는 개념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허위조작정보’라는 개념을 정립하여 다양한 해결책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 차원서 대통령 ‘왼손경례’ 심의 논란

그러나 문재인 정부 당시 허위정보 대응이 논란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2020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코로나19 방역저해 정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경례를 좌우 반전시켜 ‘왼손 경례’를 한 것처럼 조작한 사진과 김정숙 여사가 일제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허위 주장의 게시물을 삭제하는 결정을 했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을 빌미로 정부에 비판적인 허위정보와 음모론에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적용한 조항이 법적 근거가 취약하고 기준이 모호해 논란이 되는 ‘사회적 혼란 야기 조항’이었다. 현재 뉴스타파 심의에 적용한 것과 같은 조항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종합 점검회의에 앞서 국기에 경례를 거꾸로 하고 있는것처럼 나온 사진(아래). 청와대는 허위조작 합성사진이라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종합 점검회의에 앞서 국기에 경례를 거꾸로 하고 있는것처럼 나온 사진(아래). 청와대는 허위조작 합성사진이라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집권 정당은 달라졌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심의 기구 구성원과 시민단체 등 안팎의 일관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는 성명을 내고 “코로나19 관련 시정요구는 외부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 없이, 구체적인 판단 기준과 법적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고 우려했다. 오픈넷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도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현재 방통심의위 내부에서도 팀장 11명이 무분별한 ‘가짜뉴스 규제’에 우려 입장을 내는 등 반발했다. 오픈넷과 언론개혁시민연대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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