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인터넷언론 대상 통신심의를 강행해 ‘위헌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정작 보수언론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 당시 적극적으로 비판 보도를 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제동을 걸지 않으면 정권 교체 후엔 보수성향 언론을 향한 ‘표적 심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헌 논란 인터넷언론 심의, 정작 보수언론은 ‘침묵’

방통심의위는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류희림 위원장 취임 이후 사상 첫 인터넷언론 심의를 시작했다. 1호 안건은 논란이 된 뉴스타파의 녹취록 보도로 현재 의견진술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이로써 자율규제가 바탕인 인터넷언론에 전례없는 규제가 시작됐다.

방통심의위는 인터넷언론 보도가 통신심의 규정(정보통신 심의규정)의 상위 법령인 정보통신망법상 ‘정보’에 해당해 규제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방통심의위의 1차 법률검토 결과는 ‘심의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방통심의위 팀장 11명도 인터넷언론 심의 기준이 불분명하다며 반발하는 입장을 냈다.

▲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 황성욱 소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 황성욱 소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방통심의위는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KBS, MBC, YTN 등 방송 보도에 무더기 ‘과징금’ 제재를 결정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과징금’은 방송심의에 가장 강도가 높은 중징계로 2008년 출범 후 방송 보도에 과징금 제재는 역대 두 번째에 불과할 정도로 강한 조치다. 인용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조치를 해 과도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뿐 아니다. 이동관 위원장 체제의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에 ‘원스트라이크 아웃’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인이 다른 언론에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갈아타기 금지법’까지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뉴스타파 보도를 지렛대 삼아 언론에 과도한 규제가 추진되고 있고 각계의 우려도 쏟아지고 있지만 보수성향 언론에선 ‘우려’나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연일 ‘가짜뉴스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한 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선 사안을 단순 전달하거나 방통위의 입장에 비중을 두고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언론단체 긴급토론회, 방통심의위 팀장들의 우려 입장 발표 등 공개적인 반발이 이어졌음에도 이들 신문은 다루지 않았다.

특히 규제 추진과 관련 <방통위 가짜뉴스 근절 패스트트랙 가동…방송 재승인 기간 단축도>(중앙일보), <방심위, 인터넷 언론사 온라인 콘텐츠도 심의한다>(동아일보), <이동관 “가짜뉴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해야”>(조선일보) 등 규제를 도입하는 입장에 방점을 찍었다.

▲ 뉴스타파 논란 관련 조선일보 사설들. 
▲ 뉴스타파 논란 관련 조선일보 사설들. 

오히려 조선일보는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대선 전날 475만명에게 살포된 가짜 뉴스, 막을 방법 찾아야> 사설을 통해 “가짜뉴스 선거 조작은 여야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현행법상 처벌에는 한계가 있다”며 규제를 촉구했다. <허위 보도 TV 중징계, 선거 가짜뉴스 뿌리 뽑는 계기로> 사설에선 “방통심의위는 선거 가짜 뉴스의 경우 최대한 신속하게 심의해 조작 세력이 시청자들의 판단을 흐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언론중재법 국면 당시 강력 반발했던 조선일보

반면 비슷한 문제를 가진 언론중재법 국면 당시 언론은 결집해 정부여당에 맞섰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악의적 보도를 판단하기 어렵고, 언론 자유에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였다.

▲ 언론중재법 국면 당시 조선일보의 사설들.
▲ 언론중재법 국면 당시 조선일보의 사설들.

언론중재법 논의가 한창이던 2021년 6월1일부터 8월30일까지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54개 언론)에서 언론중재법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관련 보도는 3753건으로 나타났다. 주요 일간지 가운데 중앙일보가 220건으로 보도량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세계일보 204건, 조선일보 195건, 동아일보 137건, 경향신문 134건, 서울신문 131건, 국민일보 127건, 한국일보 108건, 한겨레 94건 순이다. 언론계의 반발이 거셌고, 특히 보수신문의 반발이 두드러졌다.

특히 조선일보는 여러차례 사설을 내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언론징벌법’ 있으면 조국·울산·윤미향·유재수·이상직 비리 드러났겠나> 사설에서 “기준 자체가 애매한 ‘허위·조작 보도’”를 지적하며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해석으로 언론에 소송을 걸어 입을 막고 미리 겁을 주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조선일보는 <북한 빼곤 모두 걱정하는 언론징벌법, 그래도 강행할건가>, <‘이상직 언론봉쇄법’ 통과되면 한국은 언론자유국 아니다>,  <정부 부처까지 “전례 없고 과도하다”고 하는 언론봉쇄법> 등 사설을 냈다. 

▲ 자유언론실천재단을 인용한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가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입장, 성명, 논평, 기자회견문 등을 인용한 건 처음이다.
▲ 자유언론실천재단을 인용한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가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입장, 성명, 논평, 기자회견문 등을 인용한 건 처음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이례적으로 언론단체의 입장도 충실하게 반영했다. 조선일보는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언론노조 등 4단체의 언론중재법 반대 성명을 보도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입장 발표를 별도의 기사로 내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지면에 <자유언론실천재단 “언론법 강행 처리 중단하라”> 기사를 내고 “군부 정권 시절 자유 언론 수호 투쟁을 벌였던 원로 언론인들이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고 했다.

조민 오보·문준용 조작녹취 인용보도 ‘원스트라이크 아웃’ 괜찮나

현재 기조대로 ‘오보’를 낸 인터넷언론사 대상 통신심의가 이뤄지고, 인용 보도한 언론에 ‘과징금’ 제재를 추진하고, 법 개정을 통해 오보를 낸 언론에 ‘원스트라이크 아웃’이 이뤄진다면 언론 자유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2020년 조선일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가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가 “조국 딸이다, 의사고시 후 여기서 인턴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으나 허위였다. 재판을 거쳐 조선일보는 조민씨에게 700만 원을 배상하게 됐다. 조선일보는 취재원의 말을 검증하지 못하는 등 취재가 부실했다는 입장이지만 뉴스타파 보도와 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악의적 가짜뉴스로 규정할 수 있다. 향후 야당 집권기 유사한 오보를 낸다면 조선일보 온라인 보도 심의에 나서 별도 조치를 하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 2017년 7월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전 대선 후보 등 의원들과 비대위원들이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2017년 7월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전 대선 후보 등 의원들과 비대위원들이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2017년 대선을 불과 나흘 앞두고 국민의당이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의 특혜 입사를 증명하는 대학원 동료 증언을 확보했다며 관련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대선 이후 녹음파일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국민의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녹음파일 공개 직후 이를 보도하지 않은 주요 언론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진위를 입증할 순 없었으나 의혹이 제기된 이상 반론을 더해 ‘인용’보도가 불가피한 언론의 관행 때문이다. 당시 인용했던 방송에 ‘과징금’ 제재를 추진한다면 언론 입장에선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이 과도했다면 윤석열 정부의  ‘가짜뉴스’ 대응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사법부가 아닌 행정기구가 정보의 악의성과 허위성을 가려낸다는 점에선 더욱 위험하다. 지금은 뉴스타파가 대상이지만 규제장치를 마련해둔 채 정권이 교체되면 어느 언론이든 타깃이 될 수 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지난 13일 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 긴급 토론회에서 “뉴스타파를 심의해야 한다면 모든 언론사가 다 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모두가 뉴스타파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고 했다. 

지난 14일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에서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특히나 자신들하고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언론사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나중 가면 상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지난 정부에서 강력하게 (가짜뉴스 규제를) 반대했던 언론사들이 지금 정부의 규제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한 목소리를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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