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태인 감독 '감수광'. 사진=포스트핀
▲ 허태인 감독 '감수광'. 사진=포스트핀

누구나 ‘제2의 성장통’을 겪는다.

특히 익숙한 공간과 사람을 떠날 때 그렇다. 15일 서울국제음식영화제에서 상영된 허태인 감독의 ‘감수광(光)’은 익숙한 제주도를 떠났다 돌아온 청춘의 사춘기다. 대부분에게 낯선 제주도 사투리는 누군가에겐 고향의 언어다.

사투리와 표준어. 육지와 섬. 그 사이 크기는 혼란의 크기와 같다.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향했던 한솔은 현순(엄마)의 허리수술을 핑계로 제주도로 돌아온다. 그리고 현순처럼 밭일을 하다 현순과 똑같이 허리를 다친다. 현순은 오른쪽, 한솔은 왼쪽 허리에 파스를 붙인다. 제주도 감자밭은 한솔에게 현순의 흔적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며 현순 방으로 향한 한솔은 현순 옆에 누워 혼란을 말한다. “나는 육지에 이실 때 꿈을 막 하영 꿔진다. 육지에 있으면서도 육지에 가는 꿈 꾸고 또 여기에 와서 우리 어멍이랑 할멍이랑 같이 사는 꿈도 꾸고 그러다가 눈 떠보면 내가 어디에 이신지 몰라 한참을 생각한다 아직도?”

사춘기만 성장통을 겪는 건 아니다. 서울에서 어떻게 사냐고 응석 부리는 한솔에게 “아무데나 정 붙이고 마음 붙이면 살아진다”고 위로하던 경생(할머니)는 곧바로 속마음을 내비친다. “얘 가불면 내가 어떵 살까 몰라”, “보고 싶고 가불면 어떵하리 생각 들고”.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사람만의 성장통을 겪는다.

▲ 감수광 스틸컷. 사진=포스트핀
▲ 감수광 스틸컷. 사진=포스트핀

그래서 감수광은 모두의 성장 이야기다. 한솔도, 경생도 모두 익숙치 않은 새로운 시간들을 마주할 것이다. 사춘기를 겪고 나면 무언가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의 변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어렸을 적 가족사진과, 영화 말미 현순과 바닷가에서 찍는 사진들은 앞으로도 상존한다. 그걸 알기 때문에 변화를 견딜 수 있다.

엄마의 감자전을 좋아하던 한솔은 인터넷에서 혼자 레시피를 찾아 자신만의 감자전을 완성한다. 회사 대표에 전화를 걸어 영화 초반에 거절했던 무대 작업 어시도 할 수 있겠다고 번복한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오른쪽 허리에 붙였던 파스를 뗀다. 한솔이 나중에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자신의 정체성을 그릴 것이라 영화는 예고한다. 엄마는 한솔이 만든 감자전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 서울 홍대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서울국제음식영화제. 사진=박재령 기자
▲ 서울 홍대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서울국제음식영화제. 사진=박재령 기자

감수광은 ‘가십니까’라는 뜻이다. 가지 말라는 슬픔과, 잘 다녀 오라는 격려가 공존한다. 한솔은 다시 제주도를 떠나고 현순은 밭일을 이어갈 것이다. 허태인 감독은 연출의도에서 “비극에서 태어난 희극 같은 영화를 가능케 한 이유는 힘들고 고된 시간을 견딘 한솔이 그를 닮은 얼굴들을 바라봄으로써 시선의 이동이 마음의 이동을 가져와 지속 가능한 용기가 되어주었음을”이라고 했다.

영화엔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한솔 오빠만 목소리로 잠시 출연할 뿐이다. 세 여성만으로도 강한 유대를 그릴 수 있다는 메시지도 내포한다. 독립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형식이 가능했을까. 영화가 상영된 서울국제음식영화제 포함 56개 영화제는 지난달 “2024년 영화제 지원 예산 50% 삭감을 철회하라”는 공동성명을 냈다. 현장에선 다양성 위협에 대한 공포도 동시에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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